의미 있는 살인

내가 그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는 죽음이었다.

술로 인해서 정신은 몽롱했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문득 손을 들어서 쳐다보니 손이 미세한 것을 넘어서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저 꿈이기를 바랐다. 꿈에서 악몽을 꾸기도 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자신에게 닥친 커다란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그런 특별하면서도 잔인한 일이기도 했다.


밖에서도 시끌시끌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누군가를 찾는 목소리와 함께 발자국소리가 멀리서 가까운 곳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마신술로 인해 머리가 멍하기만 했지만 좀처럼 몸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대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그런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남자가 누워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한형사는 이제 익숙해진 집안을 돌아보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다. 5년 전에 와이프가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와이프와 그 남자는 어떤 관계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동호회에서 그들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매일 야근과 바쁘게 살아가던 날이 이어지면서 와이프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와이프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새도 없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 나서 한 형사는 일에만 몰두를 했었다.


자신의 차를 끌고 출근한 그날은 조금은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강력팀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형사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지만 왠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얼마 전에 빌라 건물에서 일어난 성폭행사건서류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가해자가 특정되기는 했지만 잠적을 해서 수배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성실한 직장인으로 평을 받으면서 살았지만 그의 이중생활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말은 그럴 리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한형사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수사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한형사는 어릴 때부터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홈스에 푹 빠져 살았다. 인간의 본성과 심리, 정의와 죄의 경계에 대해 항상 의구심을 가지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막연하게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 꿈은 이뤘지만 여전히 인간의 얼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한 형사의 책상 위에 방금 타온 믹스커피가 종이컵에 담겨 올려졌다. 한형사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곳에는 자신과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 김형사가 있었다.

"한형사님 뭐가 그렇게 심각하세요."

김형사는 앞에 있었던 성폭행 사건 서류를 들춰보았다.

"이 놈 금방 잡혀요."

"그렇겠지. 피해자는 어떤 거 같아?"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요. 아직까지는 충격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거 같아요."

"그런 기억이 쉽게 잊히지는 않겠지."

"범죄자를 보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때론 이해가 가지가 않아."

"세상에 별놈들이 다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밥은 먹고 하자. 거기가 봤어? 제주토속촌이라고 말이야."

"아~ 들어는 봤어요. 거기 돔베고기랑 아귀찜이 괜찮다고 하던데요?"

"그래 거기로 가자."

한형사와 김형사는 옷과 서류등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김형사가 최근에 구입한 전기차에 오른 한형사는 바뀐 내부 디자인에 호기심을 가지고 터치스크린이 가능한 조수석의 스크린의 이곳저곳을 눌러보았다. 한형사는 이제 차가 가전제품과 같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요즘 체감하고 있었다. 차는 특유의 전기차 소리를 내면서 제주토속촌이라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박용석은 도저히 이런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과 함께 살았던 여자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버렸다. 남들이 불륜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관계는 진짜 사랑이었다. 절름발이 남편과 사는 것보다 자신과 사는 것이 훨씬 좋았을 텐데 아마도 남편이 협박을 하는 듯했다. 멍청하면서도 미련한 남편이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3년 동안 그녀와 해외여행도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것도 사라져 버렸다.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은 제주도에서 꽤나 알려진 식당이어서 돈은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어떻게든 데려오는 것만이 자신에게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전에도 몇 번 전화했던 익숙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몇 번이나 울렸을까. 수화기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니 여자가 아니라 내 와이프야. 네가 뭔데 여자를 보내라 마라야."

"그러니까. 이혼하고 여자를 나한테 보내란 말이야. 네가 못하게 하고 있는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전화하지 마. 신고할 거야."

"신고? 신고해 봐. 내가 오늘 식당으로 갈 테니까. 단판을 내자."

"올 테면 와봐. 더 이상 너한테 괴롭힘 당하지 않고 너를 죽여버릴 테니까."

"그래? 절름발이에 덩치도 작은놈이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 있다가 보자고."

박용석은 전화를 끊고 씩씩대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돈도 없고 여자가 자신의 돈을 계속 쓰자 돌아가버린 것이 2개월 전이었다. 박용석은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혼을 하고 재산을 가져오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도 없고 몸에 장애도 있는 그놈정도는 어떻게든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용석의 키는 180cm에 가까운 데다가 몸무게도 85kg으로 제법 체격이 좋았지만 그 여자의 남편은 165cm에 체격도 작고 절름발이였다.


김 씨와 이 씨는 제주토속촌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는 베테랑 직원이었다. 사장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생일이나 명절, 자식들에게 일이 있을 때 살뜰하게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꼭 집까지 태워다 주고 어쩌다가 생기는 일에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지만 부인을 보면 답답하기만 했다. 왜 그런 여자랑 살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너무나 착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김 씨의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데다가 여자를 좋아해서 결혼하고 나서 계속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이혼을 요구해서 혼자된 것이 10년 정도 되었다. 사람에게 신뢰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 믿음마저 사라졌지만 사장만큼은 달랐다. 김 씨와 이 씨는 가끔씩 찾아오는 사장의 와이프를 보면 어이가 없었다.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 화장이 너무나 진했는데 손에는 항상 명품 가방이 들려 있었다. 와서 자신의 남편에게 하는 주제는 거의 돈이야기 었다. 그러던 그녀가 3년 전인가 바람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사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매일매일 술에 취해 있었다. 가끔씩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나갔던 와이프가 다시 돌아온 것은 2개월쯤 전이었는데 문제가 봉합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작은 아버지. 오늘 예약손님이 조금 있는데 재료 좀 더 사 올까요?"

"그래, 오늘은 왠지 손님이 조금은 많을 것 같네."

"오늘 기분은 괜찮으세요?"

"어? 뭐 똑같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남자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뭐 할 말 있으세요."

"혹시, 오늘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뭐를 도와드릴까요?"

"있다가 남자가 올지 모르는데 그 사람을 제압하는 걸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왜요? 문제 있어요? 누군데 그러세요."

"그게 말이야. 전에 말했던 와이프랑 불륜했던 남자 있잖아. 와이프가 집에 왔는데도 전화해서 계속 협박했던 사람이 오늘 가게로 온대."

"진짜요? 미친 새끼. 오면 말하세요. 어이가 없다. 작은 아버지 돈을 물 쓰듯이 쓴 것도 말도 안 되는데 와이프를 내놓으라니 정말 이해가 안 가네요. 그리고 작은 어머니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그건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난 이 남자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놈한테 뭘 했지? 나는 그냥 피해자일 뿐인데 내가 이런 식으로 협박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아니에요. 작은 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아무튼 도와드릴게요."

조카인 전용철은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면서 홀로서기를 해야 했었다. 정부의 기관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성인이 되는 나이에 나왔지만 정상적인 직장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작은 아버지인 전성기를 만나면서 이 음식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식이 없었던 작은 아버지는 조카인 자신에게 마치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작은 어머니는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식당에 딸린 방에서 살게 해 주면서 주방에서 요리를 가르쳐주고 지금까지 자리 잡도록 도와준 사람이었다. 그러던 작은 아버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3년쯤 전이었다. 작은 어머니가 삶이 무료하다면서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면서부터였다. 그런 작은 아버지기 안타까워서 같이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통장 관리를 작은 어머니가 했기 때문에 작은 아버지 수중에는 돈이 많지가 않았다. 음식점과 연계된 개인사업자 통장에 들어 있는 일부 돈이 전부였다.


한형사와 김형사는 제주토속촌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김 씨는 그들에게로 와서 음식을 주문받았다. 한형사는 돔베고기와 돌솥밥등을 주문하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제주도에서 근무한 지 오래되었지만 가끔씩은 제주도가 아름답다는 것은 다시금 느낄 때가 있다. 포근한 봄날에 음식점 창으로 볼 수 있는 제주도의 화산섬의 독특한 색감과 파도, 코발트에 가까운 제주바다는 이곳에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게 만들어주었다. 이 음식점 사장과 친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모습과 항상 친절한 표정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가끔씩 바쁠 때 다른 아르바이트생도 있었지만 김 씨와 이 씨도 음식점 사장과의 관계가 돈독해 보였다.

"이 집 돔베고기가 참 괜찮아."

"그래요? 제주시 탑동 있잖아요. 거기 삼성혈 있는데 거기 음식점도 괜찮던데요?"

"아~ 어딘 줄 알겠다. 거기도 괜찮지 그렇지만 여기는 바다뷰가 있잖아."

"그건 그래요. 요즘에 정말 따뜻해졌어요. 지난주에 와이프랑 애들 데리고 유채꽃 보러 갔는데 진짜 이쁘더라고요. 얼마 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에는 제주도에서도 사건이 많은 것 같아요."

"제주도도 예전 같지가 않지, 경기가 안 좋아지니까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없는 거 같아."

"맞아요. 사람들이 살만하지가 않으니까 자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웅성웅성하면서 주변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119 차량 한 대와 경찰차가 두대가 음식점으로 사이렌을 올리면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형사와 김형사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관할이었기 때문에 자신들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한형사와 김형사는 식당밖으로 나가서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지구대에서 출당한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순경계급인 한 경찰은 경례를 하면서 말했다.

"이곳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있다는 119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했습니다."

"피 흘린 사람? 난 못 봤는데."

"아 담배 피우러 갔다가 식당의 뒤편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한형사는 김형사와 같이 식당으로 뒤편으로 갔다. 119 구급대원들이 먼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형사는 출동한 경찰들에게 말했다.

"지금 식당손님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나가지 못하게 잡아놔. 지금 이곳이 현장이야. 분명히 이곳에 범인이 있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경찰들은 식당입구에서부터 사람을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한형사는 구급대원에게 다가가서 말을 했다.

"살아있나요?"

"아니요. 맥박이 잡히지 않습니다. 사망한 지 20분 정도 경과한 것 같습니다."

"그럼 현장을 보존을 해주세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김형사 우선 신고한 사람이 누군지 찾아봐."

"예 알겠습니다."

신고한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가 않았다. 40대 초반의 신고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음식점의 뒤로 갔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대충 넝마 같은 것으로 덮어놓았지만 무릎밑의 발이 삐져나와 있었고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는 부분이 위에 보였는데 옆으로는 피로 보이는 빨간색이 점점 번지듯이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가까이 갔다가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해서 신고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곳을 오가는 종업원들이 그걸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갔다는 것이다. 식당에 있었던 사람은 자신들을 포함해서 10명이 있었다. 크지는 않은 식당이어서 모든 좌석이 꽉 차 있다고 하더라도 20명이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형사는 사망한 남자의 주변을 살펴보았다. 손에 장갑을 끼고 남자를 뒤집어보았는데 적지 않은 자상이 복부를 중심으로 나있었다. 뒤로 손이 묶여 있었는데 남자의 키와 몸무게로 볼 때 이렇게 소리 없이 제압한 것은 최소 두 명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주머니를 뒤지니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이 있었다.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보았다. 나이는 50대에 박용석이라는 사람이었다.

"김형사 주민번호랑 이름이랑 해서 확인 좀 해봐."

"예 알겠습니다."

한형사는 현장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단순한 강도나 우발적 사건이 나이었으며 분명 감정이 얽힌, 켜켜히 쌓인 분노의 결과였다.


전성기는 전화를 받고 나서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주방으로 가서 쓸만한 칼을 찾았다. 거기에는 오래돼서 칼의 날이 많이 줄었지만 길이 15cm 정도 되는 고기를 손질할 때 사용하는 칼이 있었다. 우선 그 칼을 챙겼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줄도 챙겼다. 칼은 잘 숨기고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전용철에게 손질을 했다. 그리고 김 씨와 이 씨도 불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피해 가지 않도록 할 테니 혹시나 그 남자가 오면 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조카를 비롯하여 김 씨와 이 씨는 전성기에 말에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들은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제정신으로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던 전성기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세 명 꺼내서 안에 자리한 내실로 들어갔다. 안주 같은 것은 없이 소주 세병을 그냥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적당한 취기를 넘어서 두려운 감정은 사라져 버리고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듯이 속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점심시간 2시간 전쯤에 문제의 박용석이 식당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왔는지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술기운에 몸은 휘청거렸지만 정신만큼은 분명했다.

‘오늘, 끝을 본다.’ 전성기는 그렇게 다짐했다.


"야! 사장 나와. 이 새끼 어디 있어."

멋대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전성기를 찾았다. 고래고래 외치는 박용석 앞에 김 씨가 나왔다. 남자의 얼굴부터 아래로 살펴본 그녀는 고개로 방향을 가리켰다.

"이 음식점은 다 싹수가 없어. 입 없어? 미친년이 어디서 고개를 까닥거려?"

김 씨가 음식점 뒤로 돌아가자 씩씩 거리면서 박용석은 뒤를 쫓아갔다. 그의 뒤로 조카인 전용철이 나무방망이를 가지고 뒤따라갔다. 음식점의 뒤에는 술에 취해서 조금 더 절룩거리는 모습의 전성기가 있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씨발 여자 내놓으라고. 너 같은 병신한테 과분한 여자니까. 이혼하고 재산이나 내놔"

"너 같은 새끼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뭐라고 이 새끼가 겁을 상실했나 어디 병신 같은 것이 이제는 덤비네."

박용석이 전성기에게 다가가서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덩치에서부터 차이 난 전성기는 박용석의 한방에 땅에 쓰러졌다. 이어 발로 밟으려는 박용석은 갑자기 머리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의 뒤에는 전용철이 몽둥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지금 니들 다 미쳤어?"

"미친 건 너지. 네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르지?"

이어 몸뚱이로 수차례 박용석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 때려."

그렇지만 구타는 멈추지 않았다. 박용석은 기어가듯이 겨우 빠져나가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종업원인 김 씨와 이 씨였다. 그녀들의 손에도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둘이서 마구 내려치자 다시 뒤돌아서 가려는 박용석을 전용철이 발을 걸어서 넘어트렸다. 그리고 전성기와 전용철, 김 씨와 이 씨는 계속 때리고 밟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만들었다. 그렇게 넘어진 박용석의 손을 뒤로 돌려서 묶었다.

"이제 점심 준비해.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네가! 네가 무너뜨린 거야! 내 인생을!" 전성기의 목소리는 마치 짐승의 울음 같았다.

전용철과 김 씨, 이 씨는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것을 보고 뒤에 숨겨두었던 칼을 꺼내 그의 복부를 찌르기 시작했다. 신음소리를 내면서 발버둥 치던 박용석은 과다출혈로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핏물로 물들었을 때야 그제야 전성기는 손에 들린 칼을 내려놓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저 끔찍한 꿈이길 바랐지만, 피비린내가 그게 현실이라는 걸 잔인하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죽어가는 박용석의 위에 넝마 같은 것을 덮어두고 전성기는 방으로 들어가서 술기운에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다.


"박용석 이 놈 잡범이던데요? 사기, 폭행 전과가 있습니다."

"그런 놈이 왜 이곳에서 죽은 거야 그것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이런 낯에 말이야. 정말 이상하지 않아?"

"식당에 온 손님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박용석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야. 식당손님이 아니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거야. 그것도 원한이 아주 많은 사람이야. 그렇다면 식당사장이나 종업원인데 아까 주방에서 젊은 남자가 있는 거 봤지. 이 음식점 사장은 체구도 작고 장애가 있단 말이야. 만약 그 사람이 했다면 공범이 이 식당에 있다는 말인데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아까 종업원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일을 했단 말이야."

그렇게 상황을 맞추어가던 한형사는 식당주인과 박용석이 통화를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끼워 맞추듯이 맞추어졌다. 식당주인인 전성기가 내실에서 자고 있던 것을 보고 깨워서 이 모든 정황에 대해 이야기하자 아무 변명 없이 자신이 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너무나 분노할만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 조카라는 사람이나 아무런 상관없는 김 씨와 이 씨조차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사장에게 공감을 하고 있었다. 공범으로 어떤 처벌을 받는지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형사는 그들을 경찰차에 태워서 경찰서로 보내고 김형사의 차를 타고 따라갔다.

"김형사, 죄라는 것이 무엇일까.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는 것을 범죄라고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지. 모든 국가는 사적으로 하는 복수는 허용하고 있지는 않아.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법에 의해 범죄자 역시 보호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이런 사건들을 보면 왜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사람관계가 엉망이 되는지 모르겠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안타깝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고 그렇게라도 살아야 하는지는 이해는 되면서도 납득이 가지가 않아. 서에 들어가서 컵라면이나 먹자고."


이 소설은 실제 청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입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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