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주둔한 진해에 만들어진 웅동수원지의 숨겨진 이야기
화사하고 화려하고 다채롭게 피어났던 벚꽃은 모두 졌지만 벚꽃뒤로 감추어진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해보았다. 진해시내에서는 떨어져 있는 곳으로 평소에는 군사시설이어서 안으로 접근이 안되었던 곳이 57년 만에 개방이 되었다. 웅동저수지가 있는 곳의 아래로 조성된 마을은 지금도 소사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이다. 한일합방도 되기 전에 진해에는 일본 해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웅동수원지로 가기 전의 레트로풍의 마을인 소사마을이라는 곳이다. 소사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당시 하천 상류지역인 심동마을, 용잠, 댕뱅이, 들마을, 더머이, 안몰의 6개 마을에 거주했는데 일본의 군항 건설이 되면서 웅동수원지가 조성되었는데 이때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일본은 웅동수원지를 만들고서 뚝 아래 넓은 터에 그들이 점유하고 있다는 표시로 인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심었다. 있다가 가볼 벚꽃군락지는 인근에 사는 조선사람들에게도 선호하는 공간이 되었고 웅동벚꽃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올해 개방된 웅동수원지 벚꽃단지는 광복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나 이후 안보라는 명분으로 철조망이 쳐지고 오늘날까지 일부기간을 제외하고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마을의 건물의 2층에는 봉납비가 남아 있다. 웅동수원지 조성 시 제일 난공사인 수원지수문 완공기념으로 세워진 기념비라고 한다.
최근에 조성된 이 공원은 벚꽃길, 포토존, 주차장, 안내실과 화장실로 조성이 되어 있고 내년에도 일부 구간이 오픈될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은 1904년 거제도 송진포를 해군이 강제 점유를 하고 일본 제국 해군의 근거지 방비대를 설치하였는데 이어 1906년 을사늑약의 주역이었던 참정대신 매국노 박제순이 일본 군항 건설을 허가하면서 진해가 일본수군의 군항으로 자리 잡게 된다.
군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니만큼 물이 필요했는데 그때 웅동수원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진해를 알리는 벚꽃의 이면에는 그런 역사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곳을 찾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잘 알 수 있었을 테지만 내비게이션상에서 알려주는 대로 가면 군부대를 거쳐가야 하는데 그곳을 통과해서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웅동수원지는 지난 1968년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폐쇄돼 민간인 통제 구역이 됐다. 냉전시대의 산물로 이 부근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절의 기억을 알고 있을 듯하다.
올해 관람 구간과 운영 방식은 군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설정됐으며, 철저한 현장 관리와 방문객들의 질서 있는 참여 속에 운영됐다. 내년에는 진해군항제에 맞춰서 이곳을 방문해 본다음 진해역을 중심으로 보이는 화려한 벚꽃과 달리 이곳에서 만나는 벚꽃의 매력은 어떤지 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