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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인생, 하류사회

한국의 중산층에게 미래를 희망적일까. 절망적일까.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은 인구절벽으로 인해 없어질 일은 없겠지만 20년 정도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피라미드 구조는 하부구조가 있을 때 유지가 되지 하부구조가 무너지면 정점에 있는 곳도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오를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전문가답지 않은 사람이 전문가랍시고 말하는 사람들이 강남을 이야기하지만 어차피 지방이 무너지고 거점도시인 광역시가 부실해지면 어차피 서울도 의미가 없어질 날이 온다. 부동산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왜 그곳이 오르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20여 년 전에 일본작가 미우라 아쓰시라는 사람이 하류사회라는 책을 출간했었다. 그가 말하는 ‘하류’는, ‘먹고사는 것조차 어렵고 곤궁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물론 빈곤층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생활에 특별히 부족함은 없지만 중류가 되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중류에서 내려온 혹은 떨어진 ‘중의 하’를 말한다. 수치로 본다면 상이 15%, 중이 45%, 하가 40%인 일본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필자가 볼 때 한국이 맞이하게 될 하류사회는 상이 10%, 중이 30%, 하가 60%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층은 하상, 하중, 하하정도로 나뉘게 될 것이다.


상이 10%만 돼도 상당수가 잘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500만의 인구가 해외여행이라던가 좋은 차, 좋은 집에만 거주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그들과 친한 지인들이 말을 퍼 나르면 마치 한국은 여유 있는 사회처럼 보이게 된다. 문제는 하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직업이나 수입을 누군가를 언급해서 만족하려고 한다. 즉 동창이나 친구 중에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끊임없이 언급한다. 가족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너무나 그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노력도 하기 싫지만 상대를 공격하고 끌어내리기 위해 잘 나가는 사람의 사례를 드는 식이다.


예전에 알고 있는 지인 중에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제 자영업의 시대는 일부만 제외하고 끝이 보인다. 그들의 소비계층은 대부분 중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중류 중에서도 20~30대의 사람들이 돈을 소비할 수가 있다. 5,000만의 인구가 서서히 줄어들고는 있지만 젊은 계층의 인구는 급속하게 줄어들고 장년층과 노년층의 인구는 급속하게 늘고 있다. 엑셀로 분석을 해보면 시계열에서 그들의 비중이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노후와 병원비등으로 인해 청년층처럼 소비를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젊었을 때인 10년~20년 전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미다.


하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노력대비 보상에 대한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중류나 상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객관화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하류는 그렇지 않다. 로또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계층이며 진입장벽이 낮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면 국가는 참 사악하다. 국가가 해야 할 복지의 일부분을 하류에게서 희망고문을 하면서 돈을 빼서 사회의 약자층에게 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보이는 세금은 상류층이나 중류층이 내지만 보이지 않는 세금은 하류층이 가장 많이 내고 있다. 물론 국가는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대비 돈을 많이 원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어차피 이런 일을 해봤자 받는 돈은 쥐꼬리이니 아예 시도를 안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는 이상한 비합리성에 빠지게 된다. 가족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말했듯이 그 친구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청년들의 상당수는 부모에게 얹혀서 살아간다. 어차피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부모의 집에 얹혀살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의 특징은 온전하게 홀로 서는 것대신에 가족끼리의 유대감을 강조한다. 가족이니까. 이렇게 버틸 수 있다는 위안으로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동력은 꺼져간다. 생산적인 사람들이 줄어드니 돈을 많이 줄 수 없는 회사들은 지속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에는 문을 닫게 될 것이고 대부분의 일자리는 그 정도의 월급에 충분히 만족할만한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그 정도의 월급을 받을 바에는 아예 쉰다는 청년들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하류사회라는 책에서 하류남자는 집안에서 뒹굴뒹굴, 하류여자는 노래하며 춤춘다고 말했다. 자기답게 살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는 그 마인드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상류층이 소비하는 시장은 여전히 존속이 되겠지만 중류층이 소비하는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 급성장하는 시장만보아도 다이소와 같은 업체들이다. 현실을 바꾸겠다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여유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하류층이 가장 좋아하는 노력은 로또나 가상화폐같이 한 방에 투자하는 사긴이다. 저자가 말했던 일본의 하류사회보다 한국이 더 심각하다는 것은 통계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보다 훨씬 낮은 출산율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신 하나조차 건사하기 힘든 사람들이 개고생(?)이 예상되는 가정을 구성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정치는 절대 한국의 하류사회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적어도 중류층이 주류가 되어있을 때나 가능하다. 그냥 기회의 불공평 같은 것이라던가 정규직, 비정규직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구구조, 경제상황, 성장동력등 뭐 하나 희망적인 지표 없는 한국의 미래는 희망적일까. 절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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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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