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한국사회의 남녀관계에서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최근 들어 유명인들과 만남에서 여성들이 임신을 가지고 이슈화하는 사례가 계속 내오고 있다. 겉으로 불거진 것들만 뉴스화되고 있지만 이면에 가려진 것들도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손흥민 역시 자신의 이미지가 있었기에 3억을 주고 무마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으로 돈을 요구하자 결국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게 되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제어가 안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대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당수의 여자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간다. 남자의 성역할, 여자의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지난 과거의 일이다. 좋은 일자리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에 남자들이 일했을 때의 성역활과 더불어 유교사회에서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맞물려 있었던 것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었다. 문제는 사회가 변화하여 여자들 역시 자신의 경쟁력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요즘에도 그걸 강요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반 강제적으로 여성할당을 해놓고도 말이다.
변화된 남녀 간의 성인식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과거에서 온 성역할을 남자에게 지우고 있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번 돈은 온전히 자신에게 쓰고 나서 얼마 모으지도 않고 남자들에게 경제적인 책임을 지우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결혼이 성립되지 않게 된다. 놀 거 다 놀고 결혼을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연령은 높아지고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원하지 않게 된다. 대선에서 나온 후보가 여자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좋다. 특정 범죄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렇게 여성에게 더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면 결혼율이 높아질까?
손흥민의 사례만 보더라도 그 협박여성은 이전에 그런 전력이 있었다고 한다. 정우성이나 손흥민의 경우 결혼을 전제로 만난 것도 아니고 임신에 대한 상호합의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만나기만 하면 관계에 대한 두려움 혹은 불신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모든 여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비빌언덕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언제든지 그럴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손흥민 역시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있다고 해서 여자를 만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책임이라던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보다는 훨씬 더 보수적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타인이 하는 스포츠를 보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축구나 야구 등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개인적으로 해야 할 것들만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누군가가 하는 스포츠를 보고 있을 시간은 없다. 필자가 스포츠선수를 안다고 하면 정말 유명하다는 의미다. 심지어 지역연고의 야구팀 중 한 명도 알지 못한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관계된 일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아예 없다. 적어도 손흥민이라는 선수의 이미지는 매우 괜찮게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손흥민의 책임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여자를 선택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MZ세대들이 서로에게 신뢰를 가진 연애를 할 수가 있을까. 사회에서 좋은 직업에 대해서 할당이 있을지 몰라도 용접공 여성할당제, 선원 여성할당제, 택배 여성할당제 같은 것은 없다. 정치는 왜 남녀를 극단으로 나누어서 대립시키고 있는가. 이준석 같은 정치인이 그걸 이용하고 있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결혼과 출산을 높이는 데 있어서 예산은 투입하고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서로를 갈라 치기 하게 만든다. 신뢰를 가지지 못하는 쌍방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을까.
정우성이나 손흥민이 만난 여자는 공교롭게도 모델출신이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고 싶은 여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끝내려고 했지만 여성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성적인 관계라던가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하나의 무기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로 발전하시는 힘들다. 성역할에 대해서 벗어나기를 원하면서도 유리한 것은 과거에 머물기를 원하는 일부 여자들의 행태를 볼 수 있었던 해프닝이자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