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품격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진해에 자리한 웅천도요지전시관

사람이 살았던 곳에는 어떤 것들이 남을까. 유목민과 같이 옮겨가면서 살아가는 민족이 아니라 농경을 업으로 살았던 국가들은 모두 터가 있다.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등을 거치면서 모두 집이라는 것을 짓고 살았는데 집터의 흔적과 함께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이 바로 그릇이다. 인류의 발명품 중에 생활수준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준 것 중에 하나로 바퀴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것이 그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릇 없이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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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의 웅천이라는 지역은 역사 속에서도 큰 비중이 있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주력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서양 고지도에서 창원지역은 중요한 지역으로 거론이 된다. 웅천, 칠원, 함안, 진해, 사천, 고성 등과 같은 구미현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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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웅천동이라는 지역에는 웅천도요지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웅천 도요지는 조선 전기에 분청사기와 백자 등을 제작했던 가마터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60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웅천도요지 출토품을 비롯한 8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과,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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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도요지 전시관은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외지 사람들은 많이 알지 못하는 곳이지만 웅천이라는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그릇의 역사에 대해 접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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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도요지를 비롯하여 가마의 위치와 구조, 출토유물의 특징이 알려진 조선시대 주요 자기 가마터는 약 60여 곳이라고 한다. 웅천이라는 지역에서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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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도요지에서는 출토 요도구들이 있다. 요도구란 가마 안에서 그릇을 구울 때 사용되는 보조도구로 갑발과 도지미가 대표적인 예로 진해 웅천 자기 가마에서는 도지미만 출토되었다고 한다. 도지미란 가마 바닥에 깔린 모래가 그릇에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릇 아래에 받치는 점토로 만든 용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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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전 자기 가마에서 출토된 도지미는 원주형이 대부분이며, 윗면과 아랫면이 모두 편평한 것과 윗면만 편평하고 아랫면은 경사지게 하여 가마 바닥의 경사면에 그릇이 반득하게 놓일 수 있는 제작한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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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도요지에도 가마의 형태가 발견이 되었는데 조선시대 자기 가마는 번조실 안에 시설되는 구조에 따라 실이 1개로 통해 있는 단실요, 실이 여러개로 나눠지는 분실요, 실의 매 칸이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연실요로 구분된다. 연실요는 근대가마의 대표적 형태이며 현대에도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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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웅천 가마와 거의 같은 시기에 조업했던 가마는 공주 학봉리 7호 분청사기 가마, 고창 용산리 1호 분청사기 가마, 광주 충효동 2호 분청사기 가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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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 자기 가마에 자기를 구울 때는 도지미 위에 포개어 굽는 것을 포개구이라고 하는데 고급 자기가 아닌 일상생활 용기를 구울 때 주로 쓰는 방법으로 웅천 가마터에서 발견된 그릇은 거의 포개 구이를 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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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만들어진 것은 그만큼 먹고사는 것에 대한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일찍 그릇을 제작하고 차 문화가 발달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 부근에서 머물기도 했던 왜군은 당시 조선의 장인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15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와비차라는 불리는 차 문하가 알려졌는데 조선의 사발을 통해 일본의 차문화와 도자문화는 발달하였다. 그릇의 품격을 아는 것은 삶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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