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화가 곱게 피듯이 사랑하고 삶을 살아냈던 여류시인을 찾아서.
조선시대에 잘 알려진 여류시인들로 본다면 황진이나 대전의 김호연재, 강릉의 신사임당,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 봉화군의 설죽, 부안의 이매창 등을 비롯하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천안의 문학모임 등에서 잘 알려진 여류시인은 천안 광덕사가 자리한 광덕산 자락에 잠들어 있는 김부용도 있다. 이름은 부용, 호는 운초인 조선시대 순조 때인 1820년에 출생해 1869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봄에 천안 광덕사를 찾아왔다가 한 번쯤 조선조 3대 여류시인이라는 운초 김부용 묘를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5월에 시간을 내서 여류시인인 김부용을 만나기 위해 산행을 해보았다.
이정표를 보고 올라가면 된다. 매년 보임이면 천안문인협회 회원들이 그의 문학과 삶을 기리며 추모 문학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부용은 열아홉 되던 해 일흔일곱 살의 평안감사 김이양과 만나 살게 된다. 마치 피카소가 10대 소녀를 만난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모든 숲이 그렇듯이 광덕산 역시 탄소가 고정되어 있는 숲이다. 기후 변화 대응 시범도시인 천안시는 광덕산 숲 탐방로에 탄소고정의 숲 친구를 소개하는 나무 이름표를 걸고 있다고 한다.
조금만 올라갔을 뿐인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천불전에서 올라가면 운초 김부용묘를 거쳐서 장군바위와 박 씨 샘을 거쳐서 올라가면 광덕산 정상에 도달할 수가 있다.
부용화가 곱게 피어 연못 가득 붉어라
사람들 말하기를 내 얼굴보다도 예쁘다네.
아침 녘에 둑 위를 걷고 있노라니
사람들이 부용화는 왜 안 보고 내 얼굴만 보다
- 부용화가 이쁘다더니
김부용의 묘를 보기 위해서 올가는 길목에는 김부용의 시들이 있어서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다. 김부용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77세 때 만나서 91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같이 살았다. 김이양 대감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애달픔을 노래하였다고 한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주옥같은 운초의 시는 오강루문집 등에 350여 수나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헌시와 헌화, 헌 다례로 그가 노래하는 시를 암송하면서 그의 문학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운초 묘역은 수많은 문인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제 계단을 올라가게 되면 김부용을 만나볼 수가 있다. 매년 4월 말이 되면 이곳 묘역에서 운초 추모묵학제가 열리는데 이 문학제가 197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정말 오래된 것이다. 그녀는 님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 광덕산에 묻혔다고 한다.
묘역의 앞에는 의자 등이 갖추어져 있다. 김부용은 성천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6세 때 부모와 사별한 후, 퇴기의 양녀로 들어가 가무와 한시를 익혔다고 한다. 그리고 연천 김이양을 만나 초당마마로 불리며 동거하게 된다.
천안을 자주 방문했는데도 불구하고 김부용의 묘라던가 김부용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처음 접해본다. 그녀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이 일제와 병합되는 것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시를 쓰면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던 사람이다. 올해 운초문학제는 6월 21일 오후 2시에 열릴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