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마음을 보살펴주었던 천안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사람들이 사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찰에서 함께 기도를 하는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고요함이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으로 템플스테이뿐 아니라 여름의 저우치를 느낄 수 있는 관광지와 더불어 그 지역에 자리한 사찰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고려시대에는 유독 곳곳마다 거대한 불상을 만드는 문화가 있었다.
천안 목천이라는 지역에는 용화사가 있는데 용화사는 고려전기의 석조여래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천안 용화사 석조 여래 입상은 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특징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불상이다.
용화사는 천안에 조성되어 있는 역사문화둘레길에 자리하고 있다. 이동녕선생 생가지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여름에 이곳을 방문할 사람들이라면 이동녕 생가~용화사~은석초~병천천~은석사~병천의 코스로 돌아보아도 좋다.
모든 도시에는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있다.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 있는데 유유자적 천안은 천안의 걷기 좋은 길을 찾아서 걷는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용화사의 안쪽으로 들어오니 고려시대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거불이 나온다. 천안 용화사 석조 여래입상은 높이 385.4㎝, 어깨 폭 106.5㎝. 원통형의 돌을 다듬어 만든 4m 가까이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보통 마을등에 자리한 거불이 있는 곳에는 작은 사찰이 조성이 되어 있다. 석조여래입상은 타원형의 얼굴형에 온화함이 느껴지는 얼굴 표현, 길쭉한 신체에 양감이 없는 평면적인 신체 등에서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날렵한 코에 비해 입은 작은 편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불신은 어깨는 좁고 둥글며 두껍게 표현된 대의는 전신을 덮은 통견의 이다. 가슴은 U자형으로 드러냈으며 대의는 왼쪽 어깨에 걸치면서 옷자락을 반전시킨 표현이 독특하다.
용화사의 석조여래입상의 불상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그 형태가 온전하고 다른 하나는 두상부위만 빼놓고 몸통은 추후에 제작하여 얹어놓았다. 가슴에서부터 배 밑으로 흘러내린 대의는 크기를 달리 한 U자형의 아육왕식(또는 아소카식) 옷주름으로 무릎 정도까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으며 이어져 있다.
좌측의 석조여래입상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58호로 우측의 나한입상은 천안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스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꾸미고 자신의 원래 모습을 감출 수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여름꽃들이 곳곳에 만개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노란색의 꽃이 여름에는 딱 보기가 좋게 느껴진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가 좋아했던 해바라기처럼 말이다.
천안 목천의 용화사는 1972년 자성스님과 지용스님으로 시작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사찰이라고 한다. 너무 바쁘지도 않고 그리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게 보내는 것은 그만큼 적당함이 주는 여유로움 때문이 아닐까. 용화사의 작은 연못에는 여름의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