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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연꽃

백제의 부활을 품고 만들어졌던 궁의 남쪽에 자리한 부여 궁남지

천년도 지난 시간의 일이지만 역사는 그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부여와 공주가 자리한 충남은 백제의 고도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일찍 축포를 터트린 것이 오히려 좋지 않았던 것인가. 고구려, 백제, 신라중 가장 앞서서 나간 국가는 백제였다. 근초고왕은 백제의 전반을 부흥으로 이끌면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하게 하면서 강력한 백제를 이끌어나갔다. 고구려는 백제에 대한 큰 원한을 가졌는데 장수왕시기에 백제는 한양을 빼앗기며 공주로 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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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자리한 궁남지는 매년 방문하는 곳이지만 오래는 다른 해보다 연꽃이 더 화사하고 크며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기분 탓일까. 여름이 아니면 이런 풍광과 꽃을 볼 수 있을까. 한반도에 자리한 강력한 경쟁국가였던 고구려와 백제는 끊임없이 충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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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빼앗긴 백제는 왜 공주까지 내려오게 되었을까. 수원이나 평택, 아산, 서산정도까지만 내려와도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문제는 고구려의 공격에서 지리적으로 방어를 해줄 산맥이 없다는 데 있었다. 즉 한양을 빼앗기는 순간 차령산맥(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갈라져서 충청북도의 북부, 충청남도의 중앙으로 뻗어 있는 산맥) 아래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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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에서 열렸던 연꽃축제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한여름의 7월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볼 수가 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꽃이 우리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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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에 피어난 연꽃은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꽃봉오리를 만들고 피어나고 잎을 떨구기도 한다. 연꽃의 표면을 만져보니 마치 사람의 피부와 느낌이 너무나 비슷하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시퀀스가 똑같이 반복되면 지루한 음악이 되는 것처럼 백제는 변화를 꿈꾸며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를 하였다. 그리고 궁의 남쪽에는 궁남지를 조성했다. 1964년에 대한민국 사적 제135호로 지정이 된 궁남지는 궁원지라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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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 가에서 홀로 살던 중 용신(龍神)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서동(薯童)으로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이라고 해서 지금도 스토리텔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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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공주에서도 다시 부활을 꿈꾸며 신라와 힘을 합쳐서 한강지역을 차지했지만 신라의 부흥을 이끈 진흥왕의 배신으로 인해 웅진시대도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의 삶이 변화와 성장, 결핍과 채워짐이 반복할 때 재미있는 인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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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한 태양이 떠 있을 때가 아니어서 궁남지를 거닐면서 오래간만에 한 여름의 연꽃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올해 부여서동연꽃축제의 주제는 연꽃 같은 그대와, 아름다운 사랑을 이라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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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연꽃을 같이 보면서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어보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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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연꽃을 갖추어둔 올해의 궁남지는 다른 해보다 더 잘 정비해 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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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는 궁남지의 조경(造景)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듯이 조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최초의 대규모 연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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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서 공주로 공주에서 부여로 옮겨서 화려하게 피어난 궁남지의 연꽃처럼 부활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백제의 꿈속에는 서동과 선화의 사랑 같은 아련함이 남아 있다. 연꽃의 잎은 흩날리지는 않지만 가볍지 않은 연꽃 같은 그대를 꿈꾸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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