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조성된 직산현관아~직산향교 연결하는 역사문화탐방로
직(稷)이라는 한자는 오곡의 신으로 사(社)는 흙을 맡은 신이고, 직(稷)은 곡식을 맡은 신이니, 나라를 세우면 단을 모으고 제사를 지내었다. 맹자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고 말했다. 직이라는 것은 백성을 위해 세우는 일이다.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예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했었다.
천안의 서북구지역에는 직산이라는 지역이 있다. 직산은 왕이 오가고 암행어사가 자주 방문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직산에는 진산사산성, 직산현관아, 온조왕사당, 직산향교등이 지금 남아 있다.
직산의 역사적인 흔적을 이어주는 직산 박물관마을 역사이음길이 올해 조성이 되었다. 산 사이로 비치는 밝은 달 연못 한에 비추고, 창 앞에 맑은 바람 버들잎은 푸릇푸릇하여 어찌한 데의 휴식처라고만 할만한 곳이 직산이라는 곳이었다고 한다.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의 54개 소국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곳 직산에 있던 마한 소국이었던 목지국의 우두머리를 진왕이라고 불렀다. 직산현관아는 조선시대의 관청으로 직산이라고 불리게 된 시기는 고려시대이고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이곳에 직산현관아를 세우게 된다.
관아의 입구를 상징하는 2층 문루로 된 외삼문을 지나 안으로 진입하면 동헌의 출입문으로 내삼문이 나오는데 중앙 1칸은 솟을대문이고 그 좌우에 각각 3칸, 5칸의 고방이 달려 있다.
직산의 곳곳에 자리한 역사적인 자원을 연결하는 '누구나 함께 누리는 직산 역사문화탐방로' 조성 사업을 최근 완료했다. 이번 사업은 천안시가 충남 공공디자인 공모에 선정되면서 추진된 것이다.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마을 브랜드 개발, 문화쉼터, 역사 아트월 등을 설치한 곳에 안내 사인과 마을 담장을 문화재와 조화되도록 개선해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직산향교에서 직산현관아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직산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직산읍 군서리 일대의 직산현관아, 온조왕사당, 직산향교를 연결하는 총 750m 구간에 걸쳐 탐방로다.
1588년(선조 2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는데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서리 164-1에 있는 직산향교에는 현존하는 건물로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신문(神門)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는데 국난극복의 별 충장공 황세득은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사도첨사가 되어 이순신과 함께 선봉장으로 많은 공을 세웠는데 명량해전 당시에 바다로 나갔다가 왜군의 집중 사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예전에는 행정과 군사등을 관아등에서 모두 처리를 했는데 조선시대 군현의 지방관인 수령은 법의 규정에 따라 연고지에는 부임할 수 없이 지역 사정에 어두웠다. 그에 다라 수대에 걸쳐 한 지방에 내리 살면서 고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의 6방이 수령과 함께 지역의 미풍양속을 다스렸다.
직산의 작은 마을이지만 직산은 천안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지리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직산마을은 열린 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하면서 그 길을 걸어보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