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역시 먹이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 최초의 프레데터
인간이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에 올라서게 된 것은 다른 동물보다 우세한 힘이나 생존능력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각종 운동이나 종합격투기를 한 사람보다 힘은 없어도 머리로 상대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이길 수밖에 없다. 인간이 어떤 존재보다 잘한 것은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짐승들은 타고난 힘이나 생존능력으로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런 능력은 약하더라도 상황을 이용하는 능력이 월등하게 높다.
영화 프레이는 생존에 관련된 영화이기도 하다. 아널드 슈왈즈제네거를 알린 영화로 프레데터가 있는데 그 프레데터가 최초로 지구에 왔을 때로 설정을 하고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300년 전의 아메리카는 야생의 땅이었다. 물론 개척자라고 하는 서양인들이 왔지만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인디언들과 어떨 수 없는 공존을 해야 됐던 시기였다. 그 시대에 용맹한 전사를 꿈꾸는 원주민 소녀 ‘나루’는 갑작스러운 곰의 습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포식자 ‘프레데터’를 목격하게 된다.
과거에도 인간을 위협했던 존재들은 맹수들이었다. 곰이나 사자, 퓨마 같은 맹수들과의 싸움은 마치 거대한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프레데터는 말 그대로 죽이는 것을 위해 생존하는 존재로 최첨단 기술로 무장된 무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생명체다.
인간은 먹이를 구하고 자신과 부족의 안녕을 지키기만 하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존은 다른 문제가 되었다. 지금도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뛰어다니는 청년들은 기존사회를 유지하던 법칙에서 벗어났기에 고민을 하고 있다. 영화 프레이는 야만의 시대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더 우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이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이다. 이길 수 없을 때 맞서는 것은 가장 미련한 방법이다. 사람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이 있기에 단순히 강한 것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오히려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빈틈이 생긴다.
영화에서는 프레데터처럼 근육질에 덩치 좋은 남자를 상대역으로 고르지 않았다. 여자의 몸이지만 상황을 이용해 강한 적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영리하게 그리고 있다. 우월한 유전자는 신체적인 것에 있지 않으며 생존할 수 있는 두뇌에 있다. 만약 인류가 그렇게 진화를 했다면 북유럽이나 러시아사람들만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은 아시아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보다 키나 덩치가 크지는 않지만 상황을 가장 잘 이용한 인종들이다. 약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가장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