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반남면을 본관으로 하는 반남박 씨의 시조묘역
나주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반남면이라는 지역을 잘 알겠지만 외부 사람들은 그곳이 반남박 씨의 본관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 소론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물을 배출하여 공부등으로 이름을 알렸던 성씨이기도 하다. 가문의 영향력이 상당했던지 나주에서 직접 가본 반남박 씨 시조묘역은 상당히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어떤 민족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확장을 해나간다. 유럽의 민족이라고 하면 게르만족, 앵글로색슨족, 노르만족들이 있다. 한국도 피의 흐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족보는 동족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역사이기 때문에 족보를 통하여 종적으로는 시조로부터 현재의 동족원까지의 세계와 관계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반남박 씨 시조묘역이 있는 곳의 주변에는 다양한 고분군들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반남박 씨 출신들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세종대왕의 장인이기도 한 심온을 죽이는데 앞장선 가문이 반남박 씨 가문이었다. 한동안 청송심 씨는 반남박 씨 출신들과 인연을 맺지 않았었다.
반남 박 씨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를 원시조로 여기는 전통이 있으나 공식 계보는 박응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였던 박상중, 조선의 개국공신이면서 세종의 자인을 죽게 만든 박은, 문묘와 종묘에 동시에 배향된 대학자 박세채 등이 있었다.
이곳의 지명이 말 그대로 나주시 반남면이다. 날이 좋은 날 반남박 씨의 묘역을 찾아가 보았는데 주변의 풍수가 남다르다. 벌명당인 이곳은 양류도수혈로 조선 8대 명당으로 일컫고 있다.
고려 말 우문관직제학, 판전교시사를 지낸 5세 문정공의 아들 평도공은 좌의정으로 세종 때 시조 묘역 수호 사찰인 석천암을 건립하였다. 석천함은 시조 묘역 우측 능선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
박 씨들은 씨족을 단합하는 힘을 만들었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풍수의 힘을 빌려 중앙세력을 나갈 바탕을 만들어 그 후손들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삶의 등대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풍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이곳은 반남 박 씨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이 부근의 땅은 상당 부분 반남박 씨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대를 이어 명성을 남기고 싶어 핬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가족이 대를 이어가는 형태는 희석이 되겠지만 여전히 씨족의 힘을 유지하려는 가문들도 있다.
반남박 씨의 시조묘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지금도 보존이 되고 있는 석천이 있다. 석천은 8대 명당으로 이름나게 된 천연의 샘이라고 한다. 맑은 물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 여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우연하게 방문한 반남박 씨의 묘역에서 이들의 선조가 꿈꾸던 세상과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나주시의 명맥을 볼 수가 있었다. 유학을 대대로 배웠으며 시간이 지나 실학과 개화를 이끌었던 가문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