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

진해야외공연장 전시실에서 만나보는 앤디 워홀 특별전

예술과 상업 그리고 비즈니스의 경계가 무너진 역사는 예술의 역사에서 짧은 편이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도 비즈니스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1860년대 윌리엄 모리스는 예술가와 디자이너, 공예품 장인들이 함께 일하는 가내수공업 모델을 정착시키려고 했던 사람이다. 이후에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화 경쟁은 예술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변질되었던 시대에 제품 디자인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경쟁력을 하나가 되었고 이런 산업화 공정 속에서 핸드메이드 예술 미학은 자신의 역할을 발견했다. 이른바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만들었다는 명품의 대중화도 이 시기와 맞물려 있다.

01.JPG

앤디 워홀의 작품을 잘 알지는 못해도 앤디 워홀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많다. 이민자 거주지인 도시의 소외된 빈민지역에서 앤디는 의기소침하고 소심한 소년으로 자라고 있었지만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은 놀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라났다. 순수미술을 하겠다고 결심한 워홀이 코카콜라 병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그의 특별한 예술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03.JPG

창원에 가면 앤디 워홀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워홀은 다른 화가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으며 일상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인 것을 소재로 택함으로써 너무나 대중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앤디 워홀은 팝아트 화가로 분류가 되었다. 팝아트가 나오기 전, 예술이란 예술가가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혼자만의 작업을 통해 창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04.JPG

20세기 광고와 포장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예술가는 대량 생산 소비재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상업자본주의 과정을 역전시키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일반 대중들과 다르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훨씬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불완전 때문에 고귀하다고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길은 만들어져 있지만 예술가들의 길은 아주 좁다. 그중에 소수만이 명성을 얻고 살아서 경제적으로 윤택해질 수가 있다.

05.JPG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은 화가이자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한 예술가다. 현대미술에서 소비문화, 대중문화, 광고, 세련된 소비제 등을 소재로 예술적, 대중적, 상업적인 작품을 통해 큰 인기를 누렸던 그 이야기를 10월 26일까지 창원 진해야외공연장 내 전시실에서 앤디 워홀展 'hello, Andy!'로 만나볼 수가 있다.

06.JPG

그는 무려 약 70종에 이르는 잡지에 일러스트를 기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상업 작가 시기(1949~1962) 앤디 워홀은 잡지의 삽화와 광고, 책 표지와 어린이 동화책의 일러스트, LP 커버 디자인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번 전시전에서는 이 시기 그가 작업한 110점의 잡지 삽화를 선보이는데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대규모의 전시로, 워홀의 상업시대 일러스트레이션을 집중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 시기 그가 디자인한 책 표지 18점과 LP 커버 디자인 20점도 함께 만나볼 수가 있다.

07.JPG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쉽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평가하는 것과 그 길을 직접 걸어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평가는 쉽지만 직접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예술활동이다. 평가하기만 하는 것이 대중이지만 예술가는 평가를 받으면서 스스로 내면을 끝없이 돌아봐야 하는 숙명에 처해 있는 사람이다.

08.JPG

'바나나 앨범'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정규 1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앨범 아트 등 관련 자료 12점에서 앤디 워홀은 이 앨범의 커버 디자인뿐 아니라 프로듀싱까지 직접 맡았으며, 이를 통해 예술과 대중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10.JPG

1960년대 미국과 영국의 상업디자인계에서는 예술가가 자신의 창조력을 적절하게 펼치면서 청소년 시장을 공략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 동안 서양의 시각문화는 급격하게 전환되었다. 1950년대 후반 유럽이 겨우 긴축 정책에서 간신히 벗어나고 있을 때 미국의 소비자 제품, 광고 및 영화는 신흥 소비시대를 주도하게 되었다.

11.JPG

이 전시전의 디자인들은 발곡 매력적인 색상, 다양한 디자인과 넘치는 활력, 낙관적인 이미지의 대중문화를 계급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언어로 자리를 잡으면서 대중문화라는 것을 드디어 사회 전반에 등장하게 만들었다.

앤디12.JPG

영화, 음악, 패션, 미술 등 당대 대중문화를 아우른 'Interview'는 워홀이 팝 아트 작가로서의 활동을 언론 매체로 확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앤디 워홀의 삶과 작업을 다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도 만나볼 수가 있는데 워홀의 예술 세계뿐 아니라 그의 일상, 네트워크, 시대적 맥락까지 함께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각 자료도 있다.

앤디16.JPG

워홀과 가까운 인물이 직접 촬영한 원본 슬라이드에서 인화된 희귀 사진 9점과 함께 1960년대부터 제작된 앤디 워홀 관련 포스터들이 전시된다. 앤디 워홀은 작품의 소재를 지극히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것에서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기존의 생각을 뒤집었다.

앤디17.JPG

대중문화와 함께 자라났지만 이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이르렀다. 예술가는 어떻게든 간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21세기는 한 가지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성과 컨버전스(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융합되거나 합쳐지는 일)를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를 생각하고 발견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미래에도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0R5A8198.JPG

앤디 워홀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유 있는 집안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워홀이 필요한 것을 사주려고 했으며 응원했으며 감성 교육을 실천해 주었던 사람이다. 그렇게 성장한 앤디 워홀은 특별한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으며 예술과 창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진해야외공연잔_전시실 앤디워홀 특별전

기간 : 7월 13일(SUN) ~ 10.26. (SUN)

일반 10,000원, 어린이 (7,000)

주최/주관 : 창원문화재단, 북과 바디 갤러리

후원 : 창원특례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검은 창_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