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왕의 승부수가 있었던 475년 7일간의 흔적을 만나는 국립공주박물관
7일은 길다고 느껴지면 길게도 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7일은 한 주일을 의미한다. 7일 동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 2016년으로 돌아간다면 그 해에는 조금은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알파고 대 이세돌 또는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는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하루 한 차례의 대국으로 총 5회에 걸쳐 바둑대결이 있었다. 이들의 바둑대결은 7일간에 걸쳐서 진행이 되었다. 그 해에 AI에게 인간은 패배하게 된다.
바둑은 치열하고 치밀하고 자신과의 싸움이 곁들여진 놀이 혹은 경기다. 올가을에 공주를 방문하면 한성 475라는 기획전시전이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전의 콘셉트는 바로 두 왕이 두는 바둑에 대한 이야기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아차성 일대에 본진을 차리고 한성의 공격을 시작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군은 백제의 북성(풍납토성)을 공격해 7일 만에 점령하게 된다. 이어 남성(몽촌토성)을 포위한 뒤 성문에 불을 질러 함락을 시키게 된다. 이 전쟁은 단 7일 만에 결정이 되었다.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이 전쟁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당시 개로왕은 남성의 섬문으로 탈출했다가 곧 붙잡혀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7일 동안의 기록을 살펴보기 위해 한성 일대의 지형과 성곽, 백제와 고구려의 무기와 방어구에 대한 고구학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좀처럼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결과를 뒤돌아보지 않아서 다시 똑같은 잘못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바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날마다 그날의 바둑을 복기하는 것이다. 그날 둔 바둑을 그대로 기억하여 다시 놓아보는 것은 바둑 공부의 기본이다.
당대에 이름을 알렸던 조훈현은 2016년에 알파고에게 패배한 이창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창호는 성실이 몸에 배어 있었으며 방에 있던 책을 모두 섭렵했다고 한다. 공주에서 열린 기획전에서 드는 생각은 한 수 한 수가 누군가에게는 큰 승리를 주었고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선사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개로왕은 강대한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가야와 왜국의 연합을 형성했다. 고구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백제가 북위와 공조하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장수왕은 사신을 북위로 보내고 혼담 이야기를 꺼내는척하면 시간을 벌었으며 동시에 백제 수도 한성을 공격해 백제 왕권을 무너트리기로 계획하게 된다.
바둑은 가로와 세로로 각각 19줄이 그어진 판 위에서 검은 돌과 흰 돌을 번갈아 놓는 놀이다. 당시 장수왕은 좌상단을 차지하는 묘수를 두었지만 개로왕은 장수왕의 묘수를 막기 위해 둔 자충수를 두었다.
개로왕의 개혁을 해서 포석을 두었다. 포석은 바둑을 처음 둘 때, 중반전 싸움이나 집을 차지하는 데 유리하도록 돌을 벌여 놓는 수다. 장수왕은 실리를 챙기며 개로왕을 압박하기 위해 꽃놀이패를 두게 된다. 장수왕은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를 차지하면서 백제의 수도 한성까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게 된다.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대왕을 이어받아 넓힌 영토를 안정적으로 다스리면서 주변 정세에도 능숙하게 대처했다. 개로왕 역시 야심 찬 지도자로 왕권을 강화하고 지방통치체제를 정비했다. 노련한 기사 장수왕과 패기 넘치는 도전자 개로왕의 20년 대국이 이미 시작되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이들 둘의 대결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10년 혹은 20년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꾸준하게 쌓여서 자신의 삶의 방향까지 바뀌게 될 미래를 예상해 볼 수 있는 전시전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누군가는 준비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기도 한다. 바둑을 두듯이 미래를 설계했던 두왕의 이야기 속에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보면 좋을 듯하다.
그렇게 바둑승부하듯이 승부를 했던 개로왕은 장수왕에게 전사하게 된 백제는 같은 해인 475년 10월 왕위를 계승한 문주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웅진은 한성아래로 내려가서 지형으로 방어할 수 있는 거점이었던 곳이다. 웅진에서 백제는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한성 함락 46년만이 521년에 다시 백제가 강국이 되었다고 무령왕은 선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