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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학살을 마주하다.

전쟁과 군중심리가 만들어낸 인간성을 잃어버린 영동의 노근리

종교, 스포츠, 전쟁에는 공통점이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개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으며 군중심리에 의해서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공감하고 연대하며 지금까지 생명체중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잔혹한 측면이 있다.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있을 때는 양심이라던가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단체로 행동할 때에는 책임감이 분산되기 때문에 죄의식이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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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첫날에 영동군의 노근리 학살 사건의 현장을 방문해 보았다. 한국전쟁당시에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곳 역시도 미군에 의해 민간이 학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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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미 육군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노근리 학살사건이다. 사건 당시 남측으로 내려오는 피난민들 중 민간인으로 가장한 북한 육군 병력이 숨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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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민간인을 몰아놓고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했기 때문에 수많은 총탄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훨씬 많은 총격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도 수많은 흔적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날의 참상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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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묻어 있는 얼룩덜룩 시멘트 벽면에 흰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가 벽 전면을 뒤덮고 있다. 1950년 7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쌍굴다리 일대에서 피난길에 오른 마을 주민 등 수백 명이 한국을 도우러 온 UN(유엔)군 일원이었던 참전 미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집단 희생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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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인민군에 맞서 미군은 당시 이 지역에서 영동 방어를 맡았는데 일대 마을에도 소개령이 떨어지며 주민 500~600명이 피난길에 올르게 된다. 7월 29일 미군이 철수하기까지 총격은 사흘간 이어졌다고 한다. 일부는 굴 밖으로 도망치기도 했지만, 끝내 탈출하지 못한 수백 명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 72%가 여성과 노인, 어린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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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50년 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노근리 사건 피해자와 한국 국민에게 성명을 통해 '심심한 유감(deeply regret)'을 표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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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이 구조물은 얼마나 거대해보았을까. 이곳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 부근에서는 노근리 사건 피해자 수만큼이나 미군도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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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생각의 터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의 터널을 거치지 않고 나온 결과물들은 때론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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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학살사건의 현장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서 물 위에 비친 총탄의 흔적이 마치 누군가의 삶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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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광기에 휩싸여서 생긴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무의식에 잠재된 살인. 악마적 본성이 집단 광기와 만나는 순간 학살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어떤 정신적인 임계점을 지켜야 하는지를 이곳에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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