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천안

태조 왕건이 첫눈에 알아본 명산 흑성산에 자리한 흑성산성

12월 천안으로 향했던 날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천안의 산중에는 그렇게 높은 산은 없다. 그래서 가볍게 트래킹 하듯이 거는 것을 추천한다. 천안의 산들은 둘레길을 걷듯 편안한 길이 대부분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크게 힘들이지 않는 산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태조 왕건이 눈이 그치지 않던 날의 흑성산은 풍경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 산이었다. 발밑의 길은 하얗게 덮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맑아졌다. 눈발이 소리를 삼키자 세상은 조용해졌고, 그 고요 속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듣게 된다. 산성의 돌 하나하나에 내려앉은 눈은 오래된 시간을 덮는 이불 같았고, 그 위를 걷는 발걸음은 마치 역사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더듬는 느낌에 가까웠다.

흑성산성은 싸움을 준비하던 공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가장 평화로운 사색의 장소가 되어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겨울의 산성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무엇을 지키며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버텨왔는지를. 성벽 위에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얀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앞의 풍경보다 지나온 시간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나라를 지키려 했고, 누군가는 삶을 지키기 위해 성 안으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지키며 이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눈 덮인 숲길을 내려오면서 깨닫게 된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산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계절마다 달라진다는 사실을. 봄에는 희망으로, 여름에는 생기로, 가을에는 회상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성찰로 다가오는 산. 흑성산은 그렇게 사계절마다 다른 언어로 사람을 맞이한다.

독립기념관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서면 또 하나의 시간이 겹쳐진다. 과거의 전쟁과 근대의 독립, 그리고 지금의 평온이 한 시야 안에 들어온다. 역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풍경 속에서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이 산은 말없이 보여준다. 눈이 쌓인 산성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트래킹이 아니라 시간을 밟으며 내려오는 일에 가깝다.

흑성산에서 맞은 겨울은 풍경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다. 하얗게 덮인 산길 위에서 사람은 잠시 세상의 속도를 내려놓고, 자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시간을 조용히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흑성산은 오르고 나면 풍경보다 생각이 더 오래 남는 산이었다.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태조봉이 있듯이 흑성산도 그리 무리하지 않고 올라갈만한 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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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중반까지 올라가니 눈으로 바뀌어서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에 첫눈은 아니지만 흑성산에서 맞이하는 눈은 조금은 느낌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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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성산의 꼭대기에 조성되어 있는 흑성 산성은 토축(土築)과 석축이 혼재된 형태로 축조되었는데 본래의 성을 보축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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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성산 서록(西麓)의 승척골은 매우 아늑하여 피난 터가 되었으며 승천사(升天寺) 터가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올라가면 흑성 산성이 조성되어 있다. 화장실과 전망대 갈림길을 지나 오르면 왼쪽 KBS 흑성산 중계소와 오른쪽 TJB흑성산 중계소 갈림길. 일단 오른쪽으로 올라가 중계소를 지나 헬기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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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성산의 아래에는 독립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그 부근에 어사 박문수의 묘를 쓰려고 했는데 지관을 보던 사람이 그곳은 200~300년 후에 나라에서 쓰일 땅이라고 해서 지금의 은석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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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성산성의 관문이 있는 곳에서는 상당히 넓은 공터가 조성이 되어 있다. 흑성산 꼭대기에 있는 돌로 쌓은 테뫼식(테처럼 둘러싼 형태) 산성으로 성벽은 깬 돌을 겉면만 가공해 쌓았다. 역사 속의 기록을 보면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성의 둘레가 739보(步)이며, 성 안에 우물이 1개소 있는데 동절기와 하절기에 간혹 마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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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없었던 전망대 같은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라고 이곳을 소개하고 있지만 정작 눈이 내리고 있어서 탁 트인 전망을 볼 수는 없었다. 눈 덮인 숲길을 내려오면서 깨닫게 된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산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계절마다 달라진다는 사실을. 봄에는 희망으로, 여름에는 생기로, 가을에는 회상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성찰로 다가오는 산. 흑성산은 그렇게 사계절마다 다른 언어로 사람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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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성산성과 같은 산성 같은 산봉형은 마늘을 세워 놓은 것처럼 오뚝한 산의 정상부를 에워싼 것을 일컫는다. 흑성산성과 같은 산성은 평상시에 군창(軍倉)을 두고 여기에 곡식과 무기를 준비하여 두며, 적이 침입하여 오면 평지의 주민들은 모두 들어오게 하여 농성(籠城)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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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그치지 않던 날의 흑성산은 풍경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 산이었다. 발밑의 길은 하얗게 덮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맑아졌다. 눈발이 소리를 삼키자 세상은 조용해졌고, 그 고요 속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듣게 된다. 산성의 돌 하나하나에 내려앉은 눈은 오래된 시간을 덮는 이불 같았고, 그 위를 걷는 발걸음은 마치 역사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더듬는 느낌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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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탑이 있는 자리까지 가면 흑성산성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나온다. 흑성산만 오르려면 독립기념관에서 원점회귀 산행으로 단풍나무숲길을 경유하면 된다. 운동 삼아 독립기념관 제1전시관부터 제7전시관까지 다 돌거나 야외 광개토대왕릉비 겨레 큰 마당 추모의 자리 등을 돌아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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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중간쯤 내려오면 음용이 가능한 약수터가 나온다. 가볍게 목을 축이고 다시 이동을 해본다. 흑성산성은 싸움을 준비하던 공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가장 평화로운 사색의 장소가 되어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겨울의 산성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무엇을 지키며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버텨왔는지를. 성벽 위에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얀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앞의 풍경보다 지나온 시간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나라를 지키려 했고, 누군가는 삶을 지키기 위해 성 안으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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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름은 검은 성으로 검자에는 거룩하고 신성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큰 산을 말했던 흑성산은 소리 나는 대로 검은색을 한자화한 것이다.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소나무 숲이 좋고 멋진 일출과 운해를 볼 수 있는 흑성산 여행도 추천할만하다. 이 지역은 풍수지리상 서울에서 외청룡이 되며 '금계포란형'의 명당 길지로 알려져 흑성산성 바로 아래 1983년에 건립된 독립기념관이 하게 되었다.


흑성산에서 맞은 겨울은 풍경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다. 하얗게 덮인 산길 위에서 사람은 잠시 세상의 속도를 내려놓고, 자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시간을 조용히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흑성산은 오르고 나면 풍경보다 생각이 더 오래 남는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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