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현동의 무인역과 낙동강길이 이어지는 공간
겨울의 색감이라고 하면 어떤 색일까. 보통은 무채색 혹은 회색, 은빛, 고요한 색감이 생각이 나는데 흰 눈이 내릴 때에는 풍경이 사뭇 달라지기도 한다. 역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동선길은 춥지만 나름의 추억을 남겨주었던 곳이다. 봉화군의 겨울 풍경도 만나고 도시와 대비되는 느린 리듬 속에 숲과 강, 철길이 만드는 공간의 결을 만나기 위해 현동무인역으로 떠나보았다.
봉화군의 한 작은 기차역인 동화 속 노란빛 간이역인 현동무인역은 1956년 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역이다. 소천면 소재지에 위치한 역으로 기차도 자주 찾지 않는 간이역으로 구불구불한 외길을 한참 달려야만 찾아갈 수 있는 외딴곳에 자리하고 있다.
날이 더 따뜻했다면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라졌을 뜻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외씨버선길 봉화 8길 보부상길 트래킹 코스로 인해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동무인역에서는 2013년에는 시와 음악이 흐르는 간이역 문화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오늘날 현동역은 산속에 푹 안겨있던 소박한 역사에서 동화 속 풍경처럼 노란빛 역사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
안쪽에는 읽을 수 있는 책과 더불어 역사 내 시지보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보물 같은 곳이 아니라 이런 곳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는 것도 지성인들이 해야 될 일이기도 하다.
작은 역사이지만 현동천은 낙동강의 맑은 지천 중 맨 위에 해당하는 곳으로 열목어가 산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위치한 현동역에서 내려 1km가량 떨어진 현동삼거리 일대까지 걸어가 봐도 좋다.
현동이라는 지역은 과거 봉화군 춘양과 함께 남한 으뜸의 목재 반출지로 금강소나무 산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석탄으로 활발하게 경제가 돌아갔을 때 이곳의 풍경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고 한다.
현동역을 방문했던 이날은 추웠지만 단지 춥기만 하지는 않았다. 겨울의 낙동강은 흐르지만 서두르지 않고, 얼어붙은 듯 보이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으면서 아래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물 위로 스치는 바람, 철길 위에 남은 녹슨 흔적, 숲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햇빛은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시간을 건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현동무인역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속도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에 가까웠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목적지가 먼저 존재하지만, 이곳에서는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중요해진다.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강박 대신, 어디쯤 서 있어도 괜찮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철길과 강, 숲과 겨울이 겹쳐지는 이 풍경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발걸음을 돌아볼 수가 있다.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는 대도시의 기차역도 있지만 현동무인역은 조용한 곳이기만 하다. 현동무인역은 잠시나마 들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필요한 공간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런 역 하나쯤을 마음속에 남겨두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봉화의 겨울 낙동강길은 그렇게 나에게 ‘속도를 늦추는 법’과 더불어 겨울풍경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