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로 전하는 마음으로 따오기는 생명을 이어나가다.
따오기는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정확한 시점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창녕에서 번식에 성공하면서 다시 따오기가 공존하고 있다. 논 위를 스치던 흰 날개, 저녁 햇살 속에서 분홍빛으로 물들던 몸, 그리고 계절의 경계를 따라 이동하던 느린 비행. 따오기는 원래 이 땅의 생명체였다. 러시아의 숲과 중국의 평야, 일본의 습지를 지나 한반도의 논과 강에서 겨울을 나던 존재. 국경을 알지 못하고, 지도에 관심이 없던 생명이기도 했었다.
인간의 속도는 새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농약과 개발, 효율과 수익이라는 이름 아래 하늘의 한 종은 조용히 지워졌다. 그리고 다시 따오기는 돌아왔다. 사랑은 속도가 아니라 거리였다. 따오기의 번식은 시작부터 다르다. 따오기의 번식과정을 보면 수컷은 암컷을 향해 급하게 달려가지 않는다.
암컷이 영역 안으로 들어와도 위협하지 않고, 쫓아내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며 거리는 조금씩 줄어든다. 수컷이 가까이 다가가도 암컷이 날아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의 대답이다. 따오기에게 사랑은 정복이 아니라 허락이었다.
부리로 전하는 마음은 조금 더 가까워지면 수컷은 암컷의 깃털이나 부리를 살짝 물고 당긴다. 폭력도 아니고, 강요도 아니다. “나는 너를 선택했다”는 방식의 언어다. 암컷이 도망가지 않는다면 둘 사이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계약이 맺어진다. 인간이 말을 만들기 전에 새들은 이미 관계의 문법을 알고 있었다.
둥지를 건네는 순간 수컷은 나뭇가지와 풀잎을 부리에 물고 암컷 주변을 천천히 맴돈다. 흔들고, 건네고, 다시 기다린다. 암컷이 그 가지를 받아들일 때 그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시간에 대한 약속이 된다.
둥지는 새의 집이 아니라 미래의 형태다. 깃털을 다듬는 시간은 어느 순간 서로의 깃털을 다듬어 준다.
이 행위에는 성별도, 목적도 없다. 그저 가까운 존재에게만 허락된 거리. 따오기는 말 대신 촉감으로 관계를 확인한다. 어쩌면 인간이 잊어버린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 거리였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시간
2월 중순, 해가 뜨고 지는 시간 속에 정오의 빛 속에서 따오기는 가장 활발히 사랑을 나눈다. 새로운 생명은
항상 가장 조용한 시간에 준비된다.
우리는 과연 따오기와 함께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속도로만 세상을 재단하지 않고, 효율만으로 자연을 계산하지 않고, 필요 없는 존재를 쉽게 지워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따오기가 남기는 질문은 따오기가 번식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따오기는 말하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문장을 남기고 있었다.
생명은 선택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며 다시, 하늘 위에서 한때 사라졌던 새가 다시 둥지를 틀고 다시 알을 낳고 다시 하늘을 날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복원되는 것은 새 한 종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시간이라는 것을. 따오기는 오늘도 조용히 번식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러나 반드시 이어져야 할 방식으로. 그리고 그 느린 비행은 2026년에도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질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