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은 없지만 소리 없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백제의 정원
화사하고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는 부여의 여행지 궁남지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조용하지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는 부여의 궁남지는 흰색의 옷을 살포시 입고 있었다. 그토록 무더웠던 여름이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던 연못은 겨울이 되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겨울만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물 위에는 꽃도, 그림자도 없다. 대신 시간만이 얇게 얼어붙어 있다.
궁남지는 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서동으로 잘 알려진 백제의 무왕이 만들었다. 국가가 가장 강하다고 믿던 시절, 사람들은 자연을 다듬어 질서를 세우고 도시계획을 했었다. 연못을 파고 물길을 놓고, 꽃을 심아 조성을 해두었다. 연꽃이 사라지자 남는 것은 연못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백제는 사라졌고 왕의 이름도 역사에만 남았지만, 궁남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아무것도 피우지 않은 채로 있었다. 연못 가장자리를 걷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기만 했다.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크지 않고, 사람의 발걸음도 많지 않았지만 관광지라기보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장소에 가까웠다. 무엇을 보러 왔다기보다,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확인하러 온 느낌이 든다.
겨울은 장소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여름의 궁남지는 ‘보여주는 공간’이지만, 겨울의 궁남지는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꾸밈이 걷힌 자리에 구조만 남고, 그 구조 위에 시간이 쌓인다. 이곳이 한때 국가의 정원이었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연못의 형태가 보여주고 있었다.
얼어붙은 수면 위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대신 보는 사람의 생각이 그대로 반사돼서 때론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사진보다 문장이 먼저 떠오른다. 무엇을 찍기보다는, 왜 남았는지를 묻게 된다.
궁남지의 겨울은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너무 담담하며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의 차이를 계절 하나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백제 문화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철인왕후는 경헌장목이며 철종의 비다. 그녀는 1863년 명순(明純)의 존호를 받고 이듬해 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된 사람이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의 배경이 궁남지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문장은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겨울의 궁남지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드러내지 않아서 누추하지 않고, 비워두었기에 과하지 않다. 얼어붙은 연못과 하얗게 덮인 풍경은 오히려 이 공간이 지닌 품격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화려함은 계절에 맡기고, 본래의 구조와 시간만 남겨두는 태도는 백제의 문화가 지녔던 미감과 닮아 있다.
역사는 언제나 겹겹이 쌓인다. 김부식이 기록한 백제의 문화는 책으로 남았고, 삼국사기의 문장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훨씬 뒤의 시간에는 철인왕후, 철종, 고종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다시 재해석되어 궁남지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왕조도, 인물도, 이야기도 바뀌었지만 연못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같은 풍경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겨울의 궁남지는 단순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다. 사라진 것들과 남은 것들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시간의 단면이다. 연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 이곳을 찾는 일은, 화려함을 기대하지 않는 대신 오래 남는 생각 하나를 만나보기 위한 여행이다.
아무것도 피지 않는 연못 앞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더 채울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궁남지의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