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면천읍성

면천읍성을 거닐고 골정지를 돌아보기에 좋은 겨울의 쉼표

당진의 면천이라는 지역은 그런 의미가 조용히 남아 있는 곳이다. 한때 드라마의 배경으로 스쳐 지나가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곳의 본모습은 실제 풍경 속에 있다. 겨울의 면천은 말수가 적고, 대신 남아 있는 것들이 또렷해지는 겨울이 되면 공간은 꾸밈을 내려놓는다. 잎이 떨어지고, 소리가 줄어들고, 움직임이 느려지는 겨울은 한 해를 계획 세우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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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는 2월부터 면천읍성 일원에서 ‘반려동물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반려동물 스탬프 투어는 ‘면천읍성 수호견 과거시험’을 주제로 구성됐다. 참여자는 면천읍성 곳곳에 마련된 미션 장소를 방문하며 훈련 콘셉트의 스탬프를 완성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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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 인증 장소는 총 9곳으로 △골정지(담력 훈련) △대숲바람길(순발력 훈련) △객사(의례 훈련) △남문(경계 훈련) △장청(인지 훈련) △3·10 만세운동 기념탑(독립정신 고취 훈련) △영탑사(체력 훈련) △각자성돌(증표 각인 훈련) △면천창고(물자 확보 훈련) 등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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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은 지난해 전국 최초로 문화유산 반려동물 출입 가능 지역인 ‘편하게 놀아유’로 지정되며, 새로운 반려동물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은 곳으로 면천읍성을 거닐어보면 벽의 높이와 길의 곡선, 안과 밖을 나누던 기준들이 겨울에는 더 분명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읍성 안쪽의 한옥은 겨울에 제 성격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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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는 날씨가 지나가지만, 한옥에서는 날씨가 머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처마에 맺힌 햇살의 각도, 바람이 스미는 방향, 마당에 남은 그늘의 길이로 하루가 그대로 드러난다. 날마다 ‘씨’가 붙어 날씨가 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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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집은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기보다 안에 머물게 하는데 특히 한옥의 대청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면, 움직임은 줄었지만 생각은 많아지게 된다. 큰 창과 문은 여전히 사방과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바깥을 향하기보다 안쪽을 향한다. 집이 그릇이라면, 겨울은 그 그릇의 크기를 다시 확인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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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스탬프 투어북과 기념품은 면천읍성 관광안내소에서 배부되며, 반려동물과 함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데 모든 인증을 완료한 참가자에게는 ‘면천읍성 수호견’ 임명과 함께 기념 배지 등 소정의 기념품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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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은 하나의 생활권으로 이어진 공간으로 향교와 한옥, 성곽과 연못,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작은 카페들까지. 농협 창고였던 공간이 카페로 바뀌고,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자리가 되었다. 겨울의 카페는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넓은 공간에 남는 것은 말보다 여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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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골정지라는 공간이다. 연암 박지원이 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다시 숨을 불어넣은 연못. 겨울의 골정지는 물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대신 비워진 수면에 하늘과 생각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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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정지에서 대숲바람길, 군자정과 풍락루를 지나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동안, 발걸음보다 생각이 앞서갑니다. 목적지가 아니라 순서가 중요한 길이기도 하다. 반려동물과 걸어도 좋고 홀로 걸어도 좋으며 사랑하는 이와 걷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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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보는 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낯선 공간이 감정을 깨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겨울의 면천은 그 반대로 낯설지 않아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노래를 들으며 어떤 사람을 떠올릴지, 굳이 정하지 않아도 된다. 겨울의 면천은 보여주기보다 남아 있으며 화려하지 않아서 오래 기억되는 공간으로 계절이 바뀌어도 형태를 바꾸지 않는 겨울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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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공간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특별한 장면을 남기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이 머물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풍경 속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다. 겨울의 면천은 그렇게 조용히 남아, 다시 걷고 싶어지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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