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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May 02. 2024

내가 타로에 매달릴 줄이야, 신점을 볼 줄이야

해고 통보 둘째 날

해고 통보, 아니

사직 권유를 받은 다음날은 휴일이었다.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전날 저녁, 7시 즈음 나왔음에도 나는 쉽게 주차된 차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를 너무도 걱정하고 계시는 부모님께 알리지 말까 하다가 얼마전 뭐라도 좋으니 공유해달라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 기어코 목소리를 다듬고 밝은 목소리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서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40대 혼자 사는 여자가 무작정 갈 곳도 결정하지 않고 회사를 나온다?

이건 내 딸이래도 걱정스러운 건 알아서 일부러 더 밝게 걱정하지 마시라- 말씀드렸다. 잘 될 거라고, 당신 딸이 그렇게 능력이 없지는 않다고.


그 다음 이전 직장에서 알던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HR 담당자이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일단 무작정 전화부터 했다. 오랜만의 통화에 반가운 인사말이 오가고 예의를 차릴 것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나 퇴사해요, 일자리 좀 알아봐주세요.


그렇게 집과 회사 사이 어딘가의 거리에서 서성거리면서 통화하는 사이 해가 졌고 거리의 가로등이 켜졌고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 빼고 모두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넘었고 나는 그대로 아이들을 움켜쥐고는 씻지도, 치우지도, 저녁을 먹지도 못하고 뻗어버렸다. 그리고 맞이한 둘째 날.


무기력했다.

그게 아마 가장 큰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가 과연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과연 지금 이 나이에, 대책도 없이 튀어나오는 게 맞나. 뭐 내가 튀어나오겠다고 한 게 아니라 내보내겠다고 한 건데 내가 뭘 어쩔 수 있었겠나.


눈이 크고 맑고 귀여운 막내가 와서 머리를 비벼대고 그릉거리며 들러붙는 와중에도, 생각은 생각을 물고 와서 다시 생각을 낳았다. 이 생각이란 것이 끝이 안 날 것만 같았다.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그리고, 무서웠다.

내가 뭘 잘못했나 뒤짚어봐도 이런 식의 무례한 통보를 받을만한 결함을 스스로 찾아낼 수 없었다.

물론 인사팀장님도 마찬가지 스탠스로 답을 했지만.


뭐라도 움켜쥐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신께 드리는 기도는 사실 답이 없으므로 큰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게 허구일지라도, 믿거나 말거나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답이 정말 간절해져 버렸다.




스스로가 엄청나게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app를 뒤적거리곤 타로점을 결제했다.

곧 이어진 대화.


"걱정 말아요, 금방 되겠네! 6월? 조금 늦어지면 늦가을 정도예요."


휴... 다행이다. 잠깐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고작 10분 정도.


다시 뒤적거린 끝에 이번엔 신점을 결제했다.

금새 연결되는 또 다른 예지자. 통화 너머에서 쩔렁 쩔렁 울리는 방울소리가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응- 그 회사랑 연이 음력 4월이면 어차피 끝이었네. 응응. 올해 가을 정도면 찾으니까 별 걱정 말고!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초조해 하지 말고 기다리고~"


반 존댓말을 구사하는 어리디 어린 무당의 말에 다시 한 번 화색이 돌았지만 효과는 한 시간 남짓.


다시 '고 새를 못 참고' 타로점과 신점을 뒤적거리는 스스로가 몹시도 한심하면서도 그대로 있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타로점 번, 구직 사이트 번, 신점 번, 다른 구직 사이트 한 번.


전날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배속이 배고프다며 아우성을 쳤지만 사실 그 안에 뭘 넣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 믿을 수 없는 헛된 말에라도 매달려야 할만큼 나는 상처받았고 대책이 없었고 두려웠다. 간혹 다시 아프기 시작한 막내 아이며 앞으로의 생활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물밀 듯이 밀려와서 도무지 어디서부터 생각을 정리해야 이게 끝이 날지 몰랐다.


아이들이 간식을 달라 조르는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래도 잠시나마 생각을 멈출 수 있었고, 나는 턱을 괸 채 침대에 늘러붙어 있던 몸을 겨우 일으켜 아이들의 간식을 챙겼고 집을 치웠고 화장실을 치우고 새 물로 갈아줬다. 배가 고팠지만 입을 벌려 뭘 넣기는 여전히 어렵기만 했다.


그러면서 몇 명의 타로 마스터들과 몇 명의 무당들이 공통되게 말해준 가을을 자꾸 마음에 새겼다. 안다. 나도 알고 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결국 그렇게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건데.


이미 어제 미친 X처럼 북마크만 걸어뒀다가 이력서를 넣은 기업에서는 상냥하게도 불합격 안내를 보내고 있었다. 읽어보기나 했을까? job fit은 둘째치고, 아마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노력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안 되는 나이에서 컷 당할 텐데.


두툼하게 끈적거리는 절망감 속에서 그래도 뭐라도 붙들어 앞으로 가봐야 하는 나로서는,

아직 내 곁에 남겨져 있는 아이들이 있는 한 그냥 손 놓고 포기할 래야 포기할 수가 없는 나로서는,


그 신점이라도, 그 타로라도 너무 간절했다.

그렇게 해고 통보 둘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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