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통보 여섯째 날
아무 일도 없이 연휴 3일의 막바지다.
사실 이렇게까지 쉬는 날 휴대폰을 전혀 안 들여다본 일은 없었다.
늘 휴일은 듬성 듬성 메신저와 업무, 고객 CS를 받곤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 휴일을 휴일로 보내고 있었다.
누가 그러래? 라고 회사에선 이야기하겠지만...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동의할 수 없다.
다만,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는 그 희대의 명언이 여기에도 적용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어버이날이고 직전 연휴라 아마 다른 때 같았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 본가에 다녀왔겠지만
사실 정말로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느꼈다. 정말 앞으로 무대책도 아닐 뿐더러(일단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일은 다시 충분히 찾을 거다라는 스스로의 믿음도 있거니와 뭐 일은 일, 돈을 벌면 그게 일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
꼭 내가 몸담던 분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몸이 좀 고되어질 뿐, 그 역시도 몸 아파 일 못하는 거 아니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열통처럼, 마음이 계속 무겁게 아프게 가라앉았다.
작년 내가 몸 담았던 부서 전체가 통으로 날아간 일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회사가 인간을 이딴 식으로 갈아 치우는 방식이 꼭 나 하나한테만 적용된 것도 아니었다.)
한 두 명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서 전체 개발팀, 디자인팀이 통으로 다 나가버리는 상황에서
그 때 다른 일을 하다가 개발 직군으로 들어온 개발자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신은 다시 포항으로 돌아가(포항에서 이틀만 출근하는 개발자였다) 편의점 알바를 한다 해도 상관없다고. 두렵지 않다고.
그 때 그 개발자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제야 겨우 다른 분야로 자리 잡은 지 1년이고 그게 뒤집어질 판인데.
그래도 그 때의 그 개발자가 한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건, 어쩌면 아마도
이 분야에서 일을 꼭 해야만 내가 의미있는 사람이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욕심, 혹은 편견 때문이 아닐까.
라고 이제와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께 앞뒤 말도 없이 그냥 용돈 조금을 카카오톡을 통해 보내드렸다.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무슨 돈이냐며.
어버이 날. 못 갈 것 같아서.
어머니는 이해한다는 말로 그래~ 라고 말씀하셨다.
말 끝에 물결이라니. 어머니도 참 많이 바뀌셨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나는 옳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옳지 않다는 부딪힘인지,
그 부딪힘이 건강한 부딪힘이 아니라 내 고집, 내 아집으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올바르다 믿었던 길이 끊기거나 휘어졌다고 느낄 때 제일 조심해야 하는 마음이 자책, 혹은 미움이 아닐까. 그게 가장 나를 좀먹는 마음일 테지. 다시 안착하는 어느 곳에 가서도 한 동안은 쭉 이어질 런지도.
생각이 마구 흐르다가 어느 순간 속도를 늦춰 지금 와 떠올리는 건,
지난 시간 동안 쉽게 잊혀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미움이나 불안감들이 어느 순간 잊혀졌다는 거다.
그러니 모두들 시간이 약이라는 이야길 하는 거겠지.
제일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대기 발령을 낼 거면 내든가, 협의를 할 거면 하든가 그도 아니면 해고를 시켜서 다음 스텝으로 옮기게 해주든가 하면 좋은데
시간을 질질 끌어서 날 최대한 지쳐 먼저 give up 하게 만드는 전략을 회사에서 내세울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걸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아, 알았어. 그만해. 힘들다. 포기할게. 그래, 권고사직에 동의할게. 사인할게.
그래도 뭐가 되었든지간에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자책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래도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왔다.
특히 이 사단이 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더더군다나 나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판단을 할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를 괴롭히는 마음이나 생각은 멈출 수 있도록 노력할 참이다.
내일 아침에도 비가 온댄다. 아침 출근길이 또 다름 지옥일 테지.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5월 말까지, 적절한 제시안인 3개월 급여+실업급여 정리해서 상호 더 상처되지 않게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