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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May 03. 2024

대기발령으로 드라마 주인공이 될 거라곤 생각못했다

해고 통보 넷째 날

부제목을 해고 통보라고 적긴 했지만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거다.

그냥 권유했고 의사를 물었을 뿐이라고 했으니까.


이해한다. 이젠 나이도 경력도 그걸 싸잡아서 일개 사람을 비난하기엔 나는 너무 늙고 많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이 건 내 공간이니까 그냥 제목을 두기로 한다.


다음주는 바로 월요일까지 연휴가 끼여 있는 주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당장 대기 발령을 낼 수도 있겠다라고도 생각했고 그렇다면 내가 준비해야 할 게 무엇이 있을까 라고 아침 눈 뜨자마자 생각했다. 그런 복잡한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씩씩하고 건강해서 그것 하나가 내겐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제 신점과 타로를 찾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역시, 명확하지 않고 희미하면서도 막무가내인 것에 무작정 매달리는 건 내 성향과 너무 맞지 않는다. 그건 일, 이회성으로 충분하다. 차라리 그것에 매달려 돈을 써댈 거라면, 이 아껴야 하는 와중 돈을 쓸 거라면 차라리 노무사를 한 번 더 마주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궁금한 건

1. 대기 발령 중 유급? 무급? 회사에 따라 다르다면 미리 회사에 알아봐야 하나?

2. 대기 발령 중 구직이 가능한가?

3. 대기 발령 중 아르바이트가 가능한가?

4.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면 미리 내가 뭘 준비해야 하는가, 근태 기록? 아니면 근무시간 외에 근무 이력? 


내가 연봉 협의서를 도대체 어디다 뒀더라...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난 회사에 대한 믿음이 컸나 보다.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나를 향해 아침 출근길, 나즈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잠이 오지 않아 브런치를 뒤적거려봤다.


아니 세상에.... 왜 이렇게 권고사직 당한 사람들이 많은 거야. 일방적인 해고는 물론이고, 말도 안 되는 막무가내식 처우와 직장내 괴롭힘이며... 아직 대기발령 절차가 진행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두 볼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쩜 인간이 이다지도 잔혹하고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곳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내게 되는 공간에서 같이 숨쉬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던 사람들끼리...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권고사직을 '당했다' 라고 표현하는 구나. 사실 권고 사직을 협의했다이고, 해고를 '당한' 건데. 권고사직을 '일방적인 일'이라고 느끼고 상처받고 안고 극복하고 혹은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구나.


정말 세상은 이런 것인가, 깊은 회의감에 진저리를 떨었다.


그리고 아침에 미리 결제해둔 노무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막 입사해서 반짝이는 눈으로 업무를 숙지하고 있는 대리에게 교육을 막 끝내려던 참이었다.

이 사람은 내가 면접봐서 들어왔는데, 내가 이 지경이라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겠지?

하지만 잘 해낼 거다. 그런 믿음은 가는 사람이다.




궁금했던 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1. 대기발령 기간에라도 대기 장소에 따라, 업무에 따라 다르며 회사 규칙과 상관없이 징계성 대기발령이 아니면 70% 지급. 징계성에 대해 동의할 없으면 신고

2. 구직은 안 돼. 대기 발령은 그냥 그대로 대기니까.

3. 알바는 가능하다.

4. 지금 처한 양상으로는 딱히 뭘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요는 절대 조금이라도 퇴사할까...? 라는 뉘앙스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뭐 사실 줄 것도 없다. 오늘도 아침에 교육하고 CS 받고 정리하느라 반납이 안 된다;; 



그러니까, 나는 그 난리 한 중간에 서 있으면서도 마치 폭풍우 한 가운데 있는 눈에 서 있는 것처럼, 전혀 고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요한 상태라는 기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내가 쓰는 기기는 총 네 개. 데스크탑, 노트북, 태블릿 하나 그리고 업무폰 하나.

그렇다, 그만큼 나의 업무는 광범위했고 멀티플레이어였고 다시 말해 일을 굳이 타인에게 미루기 보단 내가 안고 가는 타입이여서 그 많고 다양한 장비가 필요했었다. 이제 와 그게 무슨 의미겠냐만서도.


일단 데스크탑에 업무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웨일에 업무 북마크와 개인 북마크를 혼재해서 등록해놓았던 계정을 로그아웃 시키고 그 외에도 불필요한 파일들을 털어 정리해뒀다. 노무사는 그렇게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정말 만에 하나 책 잡힐만한 건덕지를 남겨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았다. 4월 한달은 지독히도 방황했다.

목표는 잡으라는데 잡고 보고를 하면 그게 잘못되었는지, 잘되었는지, 수정해서 반영해야 할 건 없는지 피드백이 없는 상황에서 통으로 내가 맡던 사업부서는 날아갔다. 그 다음 나는 어디를 향해 뛰어야 하냐며 울부짖듯 외쳐댔지만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고, 지쳐 스스로 뭐라도 해보려고 끄적거리던 와중에 맞이한 퇴사 명령.


현재 상황에서 차분히 들여다 본다.


1. 함부로 해고는 못 한다.

2. 만약 징계위원회가 회부될 정도로 이슈가 있었다면 미리 이야기가 나왔겠지.

3. 징계로 인한 해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회사측도 안다.

4. 압박을 주고자 함인 대기발령이라 할지라도 출근시키면 급여가, 자택대기면 평균 임금 70%가 나온다.

5. 일을 하지 않아도 어우... 생활 어쩔... ㅠ 할 정도가 아니라는 거다. 

6. 아니면 매일 지금처럼 출근하는 거다. 불안하겠지만 사실 장기적으로 보면 회사가 손해. 

7. 내가 투입되어서 업무를 맡게 될수록 인수인계가 힘들어진다.

8. 무엇보다 오래 두고 싶어 하지도 않고, (물론 나도)


∴ 겁먹지 마라. 무서워하지 마라. 어떤 악수(惡手)라 할지라도 두려울 게 없다.


오후가 저물어 간다. 곧, 아이들을 보러 집으로 향할 수 있다. 3일 내내 같이 함께 할 수 있다. 걱정을 해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를 거고 내가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조금씩 미리 짐을 빼고 준비하면 끝이다. 


안 그래도 사방팔방 힘겨울 수 있는데, 나까지 나를 힘겹게 하지 말자.. 그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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