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심장 May 11. 2024

연진아,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노무사 비용이야

해고 통보 열두 번째 날

대체 휴무를 결국 신청하지 못했다. 그동안 따로 시트에 관리하던 관행에서 승인 체계로 바꿔 올리라는 말에 그럼 어떻게 올리면 되겠냐는 답엔 끝끝내 대답을 듣지 못해 결국 월요일 출근을 하게 되었다. ㅎ... 끝까지...


어제 세 번이나 불려 다니며 인사팀장의 끝도 없는 짜증을 들었다. 최종적으로 회사 측 합의서라는 것에는 항목 7개 중 본인 그러니까, 즉 나는 뭐 하면 안 된다는 항목만 총 4개. 결국 그건 합의서가 아니라 합의 종용서이며 강압적인 지시서라고 느꼈다.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너는 신고도 하면 안 되고 말도 내뱉어선 안 돼. 그런데도, 그에 상응하는 그러니까 합의에 해당하는 건 명확한 금액도 적혀 있지 않은, 고작 두 달 치의 급여에 대한 항목만 적혀 있다. (아... 원본 까고 싶다....)


반드시 금요일 마무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상대측은 있었지만 나는 18시 5분이 되어 퇴근을 체크하고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말 주말다운 주말, 그러니까 휴일에도 메신저가 울리는지 누가 날 찾는지 두리번거리는 일 없이 오전, 아이들이 깨울 때까지 푹 잤다. 거의 4개월이 넘어가도록 온갖 치료에도 낫지 않던 팔꿈치 통증과 팔목 통증은 거의 다 나아 있었다. 통증 없는 감각이 이런 거구나... 정말 오랜만에 알게 된 감각이다.





이전에 같이 일했던 HR 담당자, 즉 사측에서 보기에도 내가 지금 요구하는 게 너무 무리한 상황을 요구하는 게 아닌지 궁금했었다. (이런 바보 같은...!!! 걔들이 고생하든 말든!!)

그래서 근무 달 말일 퇴사(실근무는 조금 빠르게 정리) + 두 달 치 급여 위로금 + 실업급여 처리 + 퇴직금, 남은 연차 수당이 무리한 요구인지를 물었을 때 보통 3개월은?? 오히려 세게 부르세요,라고 말해줬다, 상대는. 그리고 빠른 정리가 될 줄 알고 밥을 사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칭얼대는 내게 해준 말. 치사하게 굴지 말라고 하세요.


그러니까 내쪽 노무사나 혹은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회사 측에서 서 있는 HR 담당자가 보기에도 정말 너무너무 구질구질하게 굴고 있는 것이란 의미다. 참고로, 어제의 합의서를 본 노무사는 오히려 나보다 더 노발대발하면서 저건 합의서가 아니라 그냥 지들이 임의로 정해놓은 걸 따르라는 거죠!!!! 라길래 내가 오히려 워- 워- 했다. 오히려 여기까지 오니 나는 화가 나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합의서 첫 문장에 있는 '업무 평가 결과 부적합으로 인한 사직'이라는 워딩 때문이었는데 이건 내가 1차 면담 때 그런 평가가 있으면 서면으로 달라. 개선해 보겠다. 했을 때 그게 아닌 걸 알지 않냐는 인사팀장의 말과 정면 충돌하는 문장이고, 이건 이미 인사팀장이 나 외에 내쫓아야 할 여러 사람들이 매끄럽게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시달리고 있거나 짜증이 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서두르거나 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도, 노무사도, 심지어 사측을 대변하는(다른 회사 사람이지만) HR 담당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동그란 눈 세 쌍이 어? 이제 눈 떠쒀? 한다. 밤새 간식을 기다린 모양이다. 이미 오후 한 시임에도 두 번의 간식 파뤼 타임을 즐기셨다. 우리 애들은 그냥, 막, 신났다.


어차피 월요일 오전에 가면 일방적으로 들이밀어진 협의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줘야 하는데, 나는 사측 협상 대상자를 교체해 달라 요청할 참이다. 조건이 오고 갈 때마다 계속 바뀌는 것에 대해서 지치고, 거기다가 권고사직 사직서를 두 장으로 써달라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는데 계속 강요한다면 협상할 수 없는 지경이라 생각되어 사측의 다른 사람과 협상하고 싶다고 말할 참이다. 노무사도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말해줬다.


내가 그럼 5월 말까지 정상 근무 하겠다, 퇴사 시 연차 수당(10.5개, 쳇)에 대해서 제대로 처리해 달라는 것에 대해 다시 회사 측에서 딜을 건 게 나갈 때 그래도 연차 몇 개 챙겨줄게. 5개에서 6개 정도? 라며 끝끝내 흥정하는 듯한 태도에 내가 질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전에 한 번 전체적으로 쭉- 훑어 월요일 협상을 같이 논의해 줄 한 번의 상담을 더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자잘하게나마 몇 번의 상담을 통해 금액이 지불되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타이밍에 이렇게 계속 상담 비용을 들여도 되나 생각했는데....


맞다. 살면서 아끼면 안 되는 비용이다.




일단 쟁점은 몇 가지 안 된다. 이미 5월 말 퇴사에 대해서는 협의가 된 부분이고.


1. 5월 정상 근무로 처리해 주면서 실근무는 그보다 빠르게 정리할 있게 해 주겠다 / 남은 연차에 대해선 수당처리해 주겠다는 약속이 갑자기 5월에 연차 모두 소진하고 나가라로 바뀐 것에 대한 불만.

2. 일단 그 연차가 입사 첫 해 동의한 적도 없이 모두 월에 하나씩 소진되어 버린 상태라는 것. (몇 번 항의했으나 무시당함)

3. 연차를 소진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말일까지 근무하겠다는 의사에 반하여 연차 소진을 강요하는 것.

4. 합의서라는 것에 정확하게 세전/세후가 적혀 있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정확한 숫자 표기를 하지 않은 것.

5. 무엇보다 사직서에 개인 사정으로 인한 퇴직이라는 것을 한 장 더 쓰라고 강요하는 행태.


이 다섯 가지만 잘 매끄럽게 해결된다면 나는 사인할 의사가 있다고 답하려 한다. 물론 인사팀장이 아닌 다른 사측 협상자와 함께.




이 지저분~하고 구구절절한 해고 과정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는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최대한 회사나 나에 대해서 드러나지 않은 정도 내에서 자세하게 쓰는 건 아마 이 이유일 거다.


"아부지, 혹시 취업규칙이란 게 뭔지 알아요?"
"아이, 그런 거 모르지~"


그렇다. 직장생활을 30년 넘게 하셨던 아버지조차도 모르던 그 취업규칙이라는 것을 보지 않아, 내가 잘 몰라서, 회사에서 나라는 직원에 대해 아껴주고 나는 직원으로서 최선을 다 하겠다는 그 드러나지 않은 신뢰관계과 협력관계가 깨어졌을 때 대부분 나처럼 어안이 벙벙해지고 어쩔 줄 몰라한다는 것.


악용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당할 필요도 없다는 것. 상처받지 말자는 것.

그게 다이다.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다음 번에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다시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누군가 나처럼 절망스럽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싸워 나가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이전 11화 직장인이라면 지금 당장 취업 규칙을 보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