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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Jan 21. 2022

(에세이) 마당 주인으로 살면 깨닫게 되는 것

좋고 나쁨을 보는 관점



[2가지 문장를 읽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어요!"
and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마당 주인으로 살면 깨닫게 되는 것


주택에 산다고 하면 다 묻습니다.

" 주택 관리하기 힘들지 않아요?"

"계속 보수해 주어야 한다더라고요."

"마당 풀 뽑아야 되고 계속 잔디 깎아줘야 한다는데 .. 괜찮아요?"

맨 처음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거의 주택에 살고자 하는 생각이 크게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 속에서 주택에 살면 안 될 이유를 찾아 묻고 계신 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주택에 사니 너무 좋으시죠?" "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어서 좋겠어요~"

등으로 좋은 면을 일단 물어봐 주시는 분은 제 이야기를 듣고 푹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 저것 따로 알아보시다 근처로 이사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부분을 확인하려 질문합니다. 주택에 살고 싶긴 하지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을 묻고는 '그럼 그렇지' 하고 일찌감치 부정적인 부분만 듣고 단념합니다.

단점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시니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드리지만 그 뒤에 오는 많은 장점에 대한 제 이야기는 어느 정도 귀담아 들으실까요?



실제로 주택 정원은 추가'일'이 있습니다. 아파트에서는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그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필요 없는 일일까요?

저는 그 필요 없는 일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주택 전세 4년 후, 아파트 2년, 그 후 다시 주택을 고쳐 살게 된지 5년 차의 경험으로 주택 마당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정원 주인의 4가지의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


끝도 없이 마당을 정비하고 텃밭도 일구고 심고 캐고 가꾸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나가 일을 하는 유형입니다. 겨울 빼고는 잠시 의자에서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이 정원에서 일을 하고 다시 식사시간이 되면 안으로 들어가 또 집안일을 합니다. 날이 갈수록 할 일이 계속 늘어 잠시도 자신의 여유를 즐길 새가 없다는 슬픈 마당 주인이지요.


두 번째 유형


집안일을 아예 미루고, 정원일도 놔두고 주택에 사는 이유가 즐기러 온 것이니 작업복보다는 슬리퍼 차림으로 데크에서 여유를 한껏 즐깁니다. 이런 경우, 밀린 일을 결국 어쩔 수 없어 외주를 주게 됩니다. 청소도우미나 정원관리사를 자주 고용해 관리비가 상승하고 결국 주택에서 사는 건 너무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투덜거리며 얼마 못 살고 아파트로 이사 갑니다.


세 번째 유형


여유를 즐기고 싶으니 마당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한잔 마시려는데 앉아서 시종일관 걱정을 합니다. 안한 집안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그리고 마당에 쌓여있는 낙엽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정리 안된 잡초 때문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더라도 평화로운 시간이 되지 못합니다.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 찜찜한 걱정과 계획만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더 피곤해졌습니다.

한땀 한땀 바둑판 모양으로 심은 잔디가 자라는 중


네 번째 유형


정원에 잠시 힘을 쏟아야 하는 낙엽 지는 가을, 여름 장마 전의 잔디 정리, 잔디보다 더 빨리 땅따먹기에 나서는 잡초에 지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하는 봄의 시기. 그렇게 정원사의 일을 어느 정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쉴 거야' 하고 정한 후 그 시간만은 나만의 시간으로 충분히 햇살 샤워를 합니다. 분명 치워야 할 낙엽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있지만 완벽하게 꾸며진 공원같지 않아도 충분히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마당을 그대로 즐기며 자신의 시간도 온전히 누리는 마당 주인 유형이 있지요.


어쩌면 마당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 대해서도 이런 유형으로 나뉘어질 것 같습니다.

저는 첫 번째 빼고 다른 유형들을 거쳤습니다. 그런 후 현재 네 번째 유형의 마당 주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남의 정원들을 구경하면서 저렇게 꾸미고 싶다, 만들고 싶다, 부러워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아이를 육아하는 동안 제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육아를 하다 집안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제정신이 아닌데 마당을 관리하겠다니요.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이 아닌 제 마당을 관리하는 것은 그것을 원한 사람인 제가 혼자 다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남의 집 정원, 그 뒤에 숨겨진 많은 일들을 혼자 하는 것이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어요? 나무에 물도 안 주고 달콤한 열매만 원하는 저였습니다. 누군가 오래 노력해 만든 결과물 만을 부러워하며 원하는 그런 마음이었지요.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구경을 다녔습니다. 남의 집 마당을 눈으로 즐기며 보러 다니는 것이지요. 사실 모두가 직접 내 마당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서든 아름다운 꽃과 나무는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동네를 산책하며 계속 죽~ 이어진 크고 작은 집의 앞마당을 보고 계절별로 달라지는 꽃과 나무들이 그 집들과 어우러지는 색과 모양을 그 아름다운 개성들을 감상했습니다. 똑같은 집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화려한 마당도 계절이 가면 초라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을 즐기는 시기에 꽃과 나무는 열렬히 피고 또 졌습니다. 그러면서 집도 매년 달라 보였습니다. 제 눈이 바뀌었습니다. 소박한 마당의 아름다움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꽉 찬 화려한 꽃과 나무들보다 비어있는 마당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꽃과 나무에 무지한 초보 마당 주인이 조경업자가 해주는 마당을 그대로 가져와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갔습니다. 구경만 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우리 집 마당은 그전에 심어져 있던 커다란 나무들 그대로 변화 없이 심심하고 썰렁한 마당이었습니다.


향기를 맡아보라며 구부려준 듯한 튤립과 조심스런 뒷짐


골키퍼를 하면서 찍는 사진

하지만 저는 그 사이에 하나를 또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특별할 것 없는 마당이 아이들이 뛰어놀기 가장 좋은 마당이었다는 것을요. 처음 이사와 튤립을 심어둔 봄에는 공을 못 차게 했습니다. 새싹이 올라오려고 하는데 밟으면 안 된다고 구근을 심은 쪽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배드민턴만 하자고 아이를 달랬지요.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언제나 공을 차고 싶은데 꽃 때문에 마음껏 소나무 사이로 공을 굴려 넣지 못하여 불만이었습니다. 골대에 골인~ 하며 넣는 기분이 드는 딱 그곳에 제가 하필 가을에 무스카리구근을 심어둔 것이었어요. 아이에게 뛰어놀라고 잔디를 심어놓고는 꽃을 심었으니 놀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되었던 것이지요. 결국 잘못 심어둔 구근 위치는 다음 해 바로 옮겨 심어 다시 놀 수 있는 마당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연장들과 미니마우스 장화


아름다운 꽃들은 없어도 꽃보다 더 소중한 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소박한 마당이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 별것 없는 잔디마당에서도 아이들은 온갖 풀들을 발견하고 놀았습니다.

조금씩 아이들이 커가면서 둘이 서로 노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앉아서 잡초를 뽑았습니다. 봄에는 잡초를 맘잡고 앉아서 뽑아야 했습니다. 집 마당에 원래 토끼풀이 많은 편인데 금방 번져버리고 있어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함께 뽑자고 시켜도 뿌리까지 못 뽑아 안 하는 편이 오히려 나았고 남편은 바빠서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마당을 기어 다니면서 종일 뽑아도 어마어마 번져 있는 토끼풀에 정원관리가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어요.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한참 뽑고 나면 손가락과 허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직접 땅을 파서 한 칸 한 칸 심은 잔디가 잘 자라게 유지하는 건 제가 하고 싶었지요. 한 번씩 잡초를 뽑고 나면 밤에 눈을 감아도 잡초 뽑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뽑는 기분이 상쾌합니다. 엄마의 흰머리 뽑아 드리고 용돈 받는 것을 좋아했던 저였습니다만, 이런 무심한 단순노동의 명상적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비가 온 다음날이면(땅이 촉촉할 때 잘 뽑힙니다) 저는 잡초 뽑기 중독자처럼 밖에 나가서 풀을 뽑았습니다.


어느 날 둘째가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 5세) 우주여행을 떠나기 위해 아빠와 누나와 자기가 로켓을 만드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 누군가 앉아 뭔가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있어 이게 엄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네! 잡초 뽑는 엄마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마당의 잔디가 제 손길로 살아나는 것에 진심이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샅샅이 뒤지고 뿌리까지 쑥! 뽑아내는 잡초의 느낌.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아담한 정원과 집에 반해 이사 왔던 초보 가드너 엄마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 보며 완벽하고 싶은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았을 때 결국 자연스러운 정원의 아름다움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정원과 다름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애쓰고 가꾸는 정원 속 화초와 같은 아이는 결코 자신만의 가지를 뻗어갈 수 없습니다. 자연이 해답을 알고 스스로 아름다움을 뽐내듯, 애쓰는 육아, 완벽하려는 집안일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저도 온전한 저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작은 마당 주인으로서 평화를 즐길 수 있었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의 정원을 가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착이든 희망이든 어느 한쪽만 원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좋고 나쁜 것은 결국 내 관점의 변화일 뿐이란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세상의 사건들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면, 착시 그림을 여러가지로 바라볼 수 있듯  모두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원하는 것을 하면서도 불완전함의 자연스러움을 온전히 즐기는 마당 주인처럼 마음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스스로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어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매거진의 이전 글 송유정 작가님과

객원으로 참여하신 작은별 작가님 입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언제든지 제안하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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