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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Oct 14. 2022

‘책친구’를 사귀는 가장 좋은 방법

‘너의 작업실’에 함께 갈래?


신제품들이 쏟아지던 면세점을 동네 마트보다 더 자주 다녔습니다. 그런 시간이 생각보다 꽤 길었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좋은 것들을 내가 다 가질 수도 없고 또 다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도 그 시간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승무원으로 살던 시절 다른 물건들은 빨리 의미를 잃었지만 ‘책’만은 예외였습니다. 해외에 체류 중일 때도 저는 자주 그곳의 느낌을 서점으로 기억하곤 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작은 서점 구경도 즐겨했습니다.


 태국 치앙마이 서점들 좌) 더 북스미스, 우)란라오


지금 태국 치앙마이 3주 살기 중에도 서점에 들러 이곳의 느낌을 가득 마시고 왔습니다. 킨포크 편집장도 들렀다는 세련된 더 북 스미스 (The Booksmith) 서점에서부터 지역의 작은 전시들과 행사가 이루어지는 란라오 독립 책방도 들렀습니다.


책은 시공간을 이어


치앙마이에서의 여행 중 어느 날이었습니다. 숙소에서 수영을 하겠다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반캉왓의 북카페에서 머물렀습니다. 한국 책 몇 권이 눈에 띄었고 우연 같은 책의 만남이 반가워 느리게 읽던 중 자꾸만 집 근처 동네책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곳의 사진을 책방 주인 탱님에게 보냈습니다.


“혹시 거기 반캉왓이에요?” 그녀는 놀라며 사진 한 장을 제게 보냈습니다.

"앗 이곳은?" 그녀가 찍은 사진은 바로 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좌) 현재 내가 직은 사진/(우) 몇년전 탱님이 찍은 사진


나와 그녀가 몇 년의 시간차로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녀의 머릿속 안에 동네책방의 청사진 그려졌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거기서 그녀를 떠올리고 말을 걸고 싶었고 바로 그 순간 과거 그녀의 꿈과 현재가 제 눈에 겹쳐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꿈을 생생히 보았고 책이 우리를 연결해 다음 꿈을 꾸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너의 작업실’이라는 동네책방이 있습니다.

치앙마이 반캉왓에서 탱님 마음속에 그려졌던 ‘너의 작업실’ 은 그 이름처럼 제 작업실이자 친구들의 작업실이며 동네책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작업실의 열린 문을 통해 사람들은 책을 만나러 들어갑니다.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북 토크를 하는 시인을 만나러 갔던 첫 번째 제 두근거리던 발걸음도 기억합니다.

글쓰기 특강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부끄럽게 숙제를 내밀던 어느 날도 있었습니다.



책방지기 탱님의 고민을 덜어주려 서가를 새롭게 정리하러 갔던 어느 밤도 생각납니다. 책방의 글 친구들과 의자 위에 올라가 가장 높은 책꽂이 바닥까지 손을 올려 닦다가 문득 돌아보았습니다. 순간 마음 한편 서늘함이 스쳤습니다. 사람 눈길과 손이 닿지 않는 구석에 외롭게 앉은 책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심정은 어떨까 엉뚱한 상상을 했어요. 열리고 싶은 외로운 책 하나의 마음이 내 마음 같기도 했습니다.


 내 손이 닿은 책들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길~



책들이 시간을 담고 이야기를 담고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온기를 담고 있습니다.

열리기를 바라고 가슴으로 연결되기만을 기다리는 동네책방을 저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갑니다.


만나러 갑니다.

책이라는 친구를.


그리고 그 친구를 사랑하는 나와 닮은 심장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러 갑니다.

동네책방에서는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어요.


 책친구


엄마가 되고 나서 책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어오다 책을 쓰는 사람으로도 살 수 있었고,

앞으로 계속 '쓰는 사람'으로 있고 싶었습니다.

혼자도 쓸 수 있지만 책은 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다 머뭇거리고 돌아서고 말았던 동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함께 쓰고 읽는 사람들을 만나고 저는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과거에도 책은 제 곁에서 언제나 같은 거리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달라졌더니 책은 생각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주었어요.


당신이 동네서점에서 책을 친구로 사귀고 책친구도 사귀게 된다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어느 때 보다도 마음과 영혼을 깊고 천천히 나누는 차원이 다른 우정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책으로 만난 인연은 뭔가 다릅니다.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깊고 넓은 우정의 깊이는 또 다른 관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책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친구를 소개해줄 거예요.  


인생 후반기, 색다른 인연이 될 ‘책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당신의 작업실이 될 “너의 작업실”에 함께 가지 않을래요?



보글보글 글놀이
10월 2주
주제 ‘책’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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