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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Oct 22. 2022

3주간 여왕의 커피를 마셨다

치앙마이에서  '꿈같은 한때'가 지나고


‘꿈같은 한때였다.’

‘즐거운 한때였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자주 등장했던 문장들이다. 길게 늘여 칸을 메우려고 틀에 박힌 문구를 쓰면서도 하루의 그 순간을 사진 찍듯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 같다.



이틀 전 3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다. 시간의 장난질은 놀랍다. 잠시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이들과 놀다가 돌아왔을 뿐인 것 같은데 세상이 달라져있었다.

갑자기 가을이 와서 사람들이 패딩을 입고 있었고, 초록잎뿐이었던 마당이 가을 낙엽으로 색이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아무 곳에나 떨어져 있던 모과는 고양이를 살펴주러 오셨던 이웃들이 주워주셨는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오렌지 구절초는 휘어지고 늘어진 가지로도 아름다운 빛깔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돌아와서 처음 산 책- <세월> 아니 에르노
3주 동안 감사한 이웃의 도움으로 잘 지내준 민트와 콧바람


꿈같던 열대 정원에서 3주를 정신없이 보내고 왔더니 우리 집은 집주인도 없이 가을꽃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감히 ‘모든 순간이 꿈같은 한때다’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사실은 돌아오고 싶지 않을 만큼 치앙마이에서 머물고 있던 숙소가 마음에 들었었다. 에어비엔비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곳은 놀라울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나를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주었다. 우리 가족이 원하는 만큼 푸짐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메뉴의 아침이 포함되어있어 매일 아침상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방콕에 있는 손자 생각이 계속 나셨던 주인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마치 진짜 가족인 것처럼 관심을 가져주셨다. (공교롭게도 며느리가 타이항공 승무원이었다는!) 작은 카페 리조트였지만 십여 년 비행하는 동안 머물렀던 그 어떤 호텔 숙소보다 아름다운 정원과  따뜻한 직원들의 배려 덕분에 우리 가족은 3 주내 내 이곳이 내 집인 듯이 살았고 직원들과도 무척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매일 눈을 뜨면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한 후, 카페의 바리스타님의 하트를 받았다. 어느 날은 고양이였고 어느 날은 곰돌이였다. 하루 딱 한잔, 남이 타주는 커피를 여왕처럼 마시며 최고의 행복을 느꼈다.


누가 해주는 아침밥과 라테 한잔 그리고 룸 클리닝까지 포함된 천국이었다.

그곳에서는 어떤 엄마라도 매일 여왕 같은 아침 표정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누렸다.

그 3주의 시간을 매일 달콤하게 누렸다.

산후 조리원 이후로 오랜만에 낙원에 사는 것 같다고 말하니 남편은 웃었다. 내가 기뻐서 같이 기쁘다고 했다.

우리는 신혼여행에서의 기쁨이 떠오를 정도로 모든 것을 잊고 편안했다. 남편도 나도 아이들이 곁에 계속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의 여유 있는 시간에 머물렀다.


그렇게 3주는 브런치 글 몇 번 올리고 나니 지나갔고

나는 그때의 사진을 지금 하나하나 떠올리며

부드러운 라테 한잔의 맛을 추억하고 있다.

천국 같던 곳에서의 라테를 맛보던 한때였다.




그런 한때가 있었다.

여행의 한때는 꼭 끝이 있다.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가족은 집밥이 생각 안 날 만큼 매일 맛있게 태국 음식을 먹던 생활에서 내가 하는 우리 집 집밥으로 돌아왔다.

머무는 내내 숙소 주인 할머니가 챙겨주셔서 이것저것 잘 먹었던 탓인지 엄마 밥이 먹고 싶다고 한 번도 말 안 하던 아이들이라 솔직히 걱정이 조금 되었다.


실제로 태국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이제 앞으로 엄마 밥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하고 딸이 장난으로(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는 진심이었다 ) 나에게 묻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상하게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의 밥 양이 확 늘었다. 둘 다 엄청나게 먹고 있는 중이다. 집에 돌아와서 첫 식사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이 일단 김치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고추장도 맛있고 초고추장도 더 내어놓으라고 난리였다. 그리고 밥을 더 달라고 했다.  


아이들도 여행을 안다. 집으로 돌아올 것을 알기에 기꺼이 마음을 열고 입을 크게 벌려 맛을 보고 색다름을 삼켰을 것이다. 떡볶이가 먹고 싶지만 태국의 다른 매운맛도 한때이기에 잠자코 먹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여행의 기억은 햇살에 그을린 피부에 남는다. 매일 질리지 않았던 팟타이와 코코넛은 입속에도 뱃속 피부에도 남는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다시 뽀얘질 아이들의 얼굴처럼 여행은 한때로 끝난다.

독특한 맛의 기억을 머금고 그을린 얼굴로 함박 미소를 사진에 남기는 일이 여행이다.

여행의 한때는 끝나고 입맛은 결국 집에 돌아온다. 다시 오랜 고향으로 돌아와 “아~ 이 맛이야!” 하고 자신을 찾는다.


태국의 향기,

향신료의 향,

카오 쏘이와 쏨땀의 맛,

고수(코리앤더)의 향,

한때라서 더 맛있었다.


3주 내내 아침을 깨워주던 새소리,

잉어들이 펄떡이던 물소리,

매일 정원에 잔잔히 흐르던 피아노 소리.

모두 한때라서 더 소중했다.

3주 동안 우리가 머물렀던 그때의 모든 것이

이제는  ‘즐거웠던 한때였다’로 아이들의 일기로 남겨지게 되었다.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우리 집에서의 가을

하루하루 쌓여가는 세월도

모두 순간이 행복했던 한때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 순간을 떠올릴 나의 한때는 결코 하나의 때는 아닐 것이다.


이 모든 순간이 겹쳐진 한때.

사랑하고 사랑받고

온전히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수많은 순간이 겹쳐진 한때의 추억.

결국 그것이 꿈같은 인생의 한때로

내 입속에 모든 맛을 머금은 미소를 띠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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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주
주제 “한때”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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