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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19. 2022

너와 나의 한때

이번 글은 큰아들 건이(초등 4학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학교 운동회 응원가였던 '신나는 운동회'를 집에서 열창하는 동생을 보고 건이 너는 말했지.

"오! 규 노래방 가서 노래하면 진짜 잘하겠는데?"

"그러게. 규 노래 잘한다. 이 노래 어려워서 엄만 잘 못 따라하겠다."

"하도 많이 들었더니 저까지 다 외웠다고요."

"그나저나 옛날에 노래방 갔던 기억나?"

"네. 옛날에 키즈 카페 안에 있던 노래방에서 노래 불렀던 거 기억나요."

"엄마랑 노래방 가볼래?"

"좋죠! 이번 토요일에 문구점 가서 HB 연필 사고 노래방 가요."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어. 노래방에 가서 규가 마이크 잡고 부르는 '신나는 운동회'를 들을 생각에 우리 둘 다 들떴는데, 막상 집돌이 규는 집에 있겠다고 했지. 집에서 게임하고 쉰다고. 일하는 아빠는 어떻게든 규를 엄마 편에 내보내고 싶어했지만 규는 완강했어.


하는 수 없이 건이와 엄마 둘이서 길을 나섰지. 학교 앞 작은 문방구와 집 근처 무인 문구점만 다니던 너는 큰 문구점에 들어가서 눈이 휘둥그레졌단다.

"이렇게 큰 문구점이 있어요? 물건 되게 많아요."

"응, 이런 데 처음 와봤구나."

"와! 초록색 보드 마커가 있네. 이것 좀 사주시면 안 돼요? 할로윈이 다가오니까 스크림 가면도요. 우와! 전동 지우개? 이것도 사주세요."

"그래. 마커랑 스크림 가면 사고, 전동 지우개는 쓸모 없지 않니?"

"너무 신기해요. 제발요!"

"알았어. 그럼 그것까지만 사자.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순 없어. 원래 사려던 HB연필 담고, 이제 더는 사지 말고 구경만 하자."


계산을 하고 밖에 나오니 너는 한층 더 들뜬 모습이었다.

"노래방 어디예요?"

"어, 조금 걸어가면 나와."

"노래방 어디예요?"

"어, 저어기... 가보면 알아."

엄마는 사실 벌써 지쳤는데 너는 활기차게 노래방 어디냐고 반복하여 물었지.


걸어서 도착한 코인 노래방은 주말을 즐기는 청소년들로 꽉 차있었다. 엄마도 코인 노래방이라고는 딱 한 번 가본 데다가 그것도 갔던 시간이 평일 오전 10시였기 때문에 이런 사태(?)는 예상하지 못했어.


"어떡해요? 우리 노래방 못 가요?"

너는 사뭇 실망한 모습이었지.

엄마는 속으로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하며 말했어.

"아니야. 여기 근처에 노래방 또 있어."


핸드폰으로 코인 노래방을 검색하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너는 '노래방' 글자만 보이면 흥분하여 "저기 노래방!!!"이라고 외쳤어.

"거기 말고 코인 노래방으로 가자."

"그냥 노래방이랑 코인 노래방이랑 뭐가 다른데요?"

"그냥 노래방은 시간 단위로 돈을 내고 코인 노래방은 동전을 넣고 하거든. 그냥 노래방은 한 시간 단위로 돈 내야 해서 너랑 엄마랑 둘이 부르기가 힘들고... 하여간 설명하기 힘들다. 코인 노래방으로 가자."


그렇게 찾아간 코인 노래방에는 다행히 빈 방이 몇 개 있었지.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선곡을 하였어. 네가 처음으로 고른 노래는 이무진의 '신호등'이었지. 그다음 곡은 규 덕분에 알게 된 '신나는 운동회'였고. 절대음감 절대리듬감 건이 너는 노래도 참 잘 부르더라. '신나는 운동회'는 박자도 어렵고 높기도 엄청 높아서 엄마는 같이 부르다가 목이 쉴 뻔했어. 요즘 동요는 왜 이리 어려운 거니?

TJ(태진)미디어

노래를 부르며 엄마는 어떤 노래를 선곡할까 고민했단다. 네가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노래가 뭐가 있을지 고민했지. 엄마가 처음으로 선곡한 노래는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였어. 이 노래라면 멜로디도 신나고 가사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지. 그렇게 간만에 열창을 하는데 몇 소절 부르기도 전에 노래가 멈추고 노래방 조명이 환해졌어. 우리는 영문을 몰랐지.

"건이가 취소 버튼 누른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전 리모컨 근처에도 없었다고요. 엄마, 괜히 100원만 날렸네요."

건이야, 100원이 아니라 250원이란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괜히 노래하다 끊기니 김만 샜네. 알고 보니 마이크 두 개 중에 하나가 고장이었는데 엄마는 고장난 마이크에 대고 열창을 한 거더라고. 노래방 기계는 노랫소리가 인식되지 않아 자동으로 반주를 끈 거고.   


가요를 잘 모르는 너는 부를 노래가 없어서 고민했다. 예전처럼 노래 책자가 있으면 스윽 보다가 '이거다' 싶은 노래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요즘은 그게 없어서 영 불편하단 말이지. 아무튼 너는 거북이의 '비행기'랑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 경기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엄마는 UP의 '뿌요뿌요', No Doubt의 'Don't Speak', DOG의 '경아의 하루'를 불렀다. 엄마가 노래를 끝낼 때마다 너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게 뭔 내용이에요?"라고 했지.

"Don't Speak은 연인이 이별하자고 말할 거 같으니까 말하지 말란 내용이고, 경아의 하루는 한때 열심히 살다가 지금은 빈둥대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얘기야."

"그렇군요."


우리는 잘 놀고 밖으로 나왔다. 밝았던 하늘이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더라. 너는 문구점에서 산 물건이 담긴 비닐 봉투를 흔들며 "저, 쇼핑의 재미를 알게 된 거 같아요."라고 해서 엄마를 웃겼어. "오늘 진짜 잘 놀았다!"라고 연신 말하는 널 보며, 엄마도 흐뭇한 미소를 띠었지.

"우리 건이 중학생 되면 엄마랑 안 놀아 주려나?"

"네, 당연하죠!"

"그래, 중학생 되면 친구들이랑 놀아야지."

"중학생 되면 숙제하느라 바쁠 거 아니에요. 다 이유가 있다고요."

"그래. 알았어. 중학생 되기 전에 엄마랑 많이 놀아줘."


지금 이 순간을, 아마 나중에 '아이랑 신나게 놀았던 한때'로 기억할 것 같다.

너에게도 지금이 '엄마와 즐겁게 놀았던 한때'로 기억되기를.

'우리의 한때'는 즐겁고 신나는 나날이었어!



비타민, 신나는 운동회 (초딩들이 화장까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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