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글놀이 1월 4주 '며느리, 사위, 사돈'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의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드렸던 날이었다. 시부모님, 첫째 아주버님 둘째 아주버님 내외, 그리고 조카들이 함께 식사 장소에 일찍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부끄러운데 더 먼저 가있을걸, 얼굴은 왜 부었지?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어머님은 어떤 분이실까?'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에 남자친구의 손을 더 꼭 붙잡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함께 예약된 룸으로 천천히 들어갔을 때 어머님이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시면서 성큼 다가오셨다. 그리고 나를 제대로 보시지도 않고 그대로 와락 안아주셨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반가워요~"
아이 어르듯 반가운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만남의 기쁨과 흥분이 담겨있었다.
나를 하나하나 유심히 보거나 어떤 사람인가 관찰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저 나의 존재가 와주었다는 것 자체로 기쁜 포옹이었던 것이다. 키 큰 나는 아담한 어머님께 엉거주춤 안긴 상태로 어쩔 줄 몰랐다.
무뚝뚝한 부산 지방의 어른들과 다른 다정한 접촉에 놀랐지만 마음은 급격히 따뜻해졌다.
어머님의 환대 덕분에 처음 뵙고 식사하는 시간이 무척 긴장되었지만 생각보다 편안하게 지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가족 중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깜찍한 외모와 애교로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큰 형님네의 막내가 어머님께 다가가서 울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영문을 몰랐던 가족들은 모두 당황했다.
" 할머니! 안 돼요~공주님은 나란 말이에요! 앙~"
어머니가 반가워서 나를 불렀던 '우리 공주님'이라는 호칭에 화가 난 것이었다. 갑자기 웬 처음 보는 여자가 나타나 가족들의 관심을 몽땅 뺏아간 것도 모자라, 감히 나만의 호칭인 '공주님'을 뺏아가다니.. 그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아쉽게도 어머니는 그 이후로는 공주님이라고는 한 번도 불러주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맨 처음 만났던 날, 나는 어머님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 귀한 존재를 부를 때 쓰는 다정한 애칭이었던 '공주님'으로 불러주시며, 내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받아주셨던 그 순간을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에게는 5학년과 3학년이 될 딸과 아들이 있다. 아마 20년 후쯤 되어야 진정한 며느리와 사위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슬쩍 미래에 가서 상상해 본다.
내 딸은 어떤 며느리일까?
내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는 어떤 사람일까?
또 내 아들은 어떤 사위로 살게 될까?
내 딸이 결혼할 사위는 어떤 사람일까?
같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내 딸과 내 아들과 결혼할 여자는 다른 존재이다. 사위도 마찬가지.
그 특별하고 다른 존재가 역할 이름 속에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그렇게 보이고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모든 역할에는 그 배역을 자동연기할 수 있을 만큼의 특정 캐릭터가 이름 속에 들어있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학습되고 전해진 인식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기도 전에 행동하게 만들곤 한다.
우리는 구별하려 분류하고 정해둔 그 이름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그 역할에 빠져들어 이쪽 편 저쪽 편으로 나누고 그 옷을 입고 벗는다. 내가 장모님이 되었다가 시어머니가 되었다가 할 때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크게 달라진다면 진정으로 사회적 역할놀이에 심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은 그래도 되는 역할이야~ '하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그런 역할 극을 연기할까?
예의와 존중을 위해서라면 좋은 미덕이 되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역할에 가려져 어떤 한 사람을 그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정도는 해야지!' 하고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똑같이 전화를 안 해도 딸은 바쁜가 보다 하고 넘어가거나 오히려 걱정을 하는데, 며느리가 그러면 불편하고 도리에 어긋난다고 느낀다면 내가 시어머니의 역할을 쓰고는 그 연극 속에서 며느리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진정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하는 행동은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며느리라고 이름 붙이고, 사위라고 이름 붙이는 바람에 진짜 사람이 안 보인다. 해야만 하는 것들에 가려버리고 만다. 역할 이름보다 진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미래 내가 새로 만나게 될 가족은 그들의 이름만 다정하게 불러보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선물처럼 만나게 될 그들을 어머니처럼 특별하게 불러주고 싶다. 비록 하루만 며느리를 공주님으로 부르게 되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날은 꼭 안아주고 싶다. 내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주셨던 감사했던 경험을 이제 다음 세대로 나눌 줄 아는 시어머니와 장모가 되고 싶다.
(그런데 20년 후...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한숨이 나온다. 생각보다 많이 남은 듯해서 벌써 지친다. 그때쯤 되면 정말로 공주님! 여왕님! 임금님! 하고 온갖 호칭을 다 부르며 결혼만이라도 해주어서 효도했다고... 이날만 기다렸다고 감사하며 도리어 내가 절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 글 Jane 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