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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26. 2023

사위 말고 아들처럼

진정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나에게 두 가지 새로운 호칭이 생겼다. 바로 '남편'과 '사위'였다. 남편이야 아내만 신경 쓰면 되지만 사위 역할은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남편 역할이 훨씬 어렵지만.


아내와 결혼 전 남차친구였을 때 처음 장인, 장모님을 뵌 곳이 병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믿기지 않은 일 때문이었다. 홍대에서 아내와 지인들을 만나 신나게 놀다 집으로 가려고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옆에서 '꺅'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쳐다보니 아내는 발을 잡고 있었고, 저 앞에서 자그마한 쥐 한 마리가 시야에서 금세 사라졌다. 아내 발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고, 엉엉 우는 아내를 데리고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홍대 한 복판에서 쥐에 물리다니. 번개 맞을 확률과 비슷하려나. 결국 장인, 장모님께 연락이 갔고 한걸음에 병원에 달려오셨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밤임에도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직접적인 잘못은 없었지만 그래도 딸을 병원까지 가게 한 주범이니 곱게 비쳤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인연이었는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장인어른은 다소 차가운 첫인상과 달리 따뜻하고 유쾌한 분이셨다. 특히 장인어른과 나 사이에는 운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에 서먹할 때 축구나 야구 이야기로 활로를 찾곤 했다. 그즈음에 등산이라는 취미가 생겼고, 등산 동호회 활동까지 할 정도로 산을 좋아하는 장인어른과 3박 4일로 지리산도 다녀왔었다.


장모님은 차분하고 조용한 분이었다. 신앙심이 두터워 나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점은 아내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내면이 돌처럼 단단해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장인어른보다 훨씬 강했다. 하나 재밌는 점은 식성이 나와 같다는 점이다. 다른 가족보다도 훨씬 일치하는 점이 많아서 아내는 오히려 내가 아들 같다며 신기해했다.


결혼 초반엔 가끔 찾아뵈니 적당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나고 덜컥 처가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직장에선 당직근무가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집에 가지 못했다. 이제 갓 태어난 아내와 아이만 두고 가는 것이 그랬는데, 내가 없는 사이 도둑까지 든 일이 발생했다.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당직이 있는 날은 아내와 아이를 처가댁에 보냈다.


하나 둘 아기 용품이 처가댁에 놓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당직이 없는 날도 가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장모님께서는 서로 합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하셨고,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다.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어서였는데, 그 시간이 채 2년을 넘지 못했다.


그때부터 현실이었다. 그저 가끔 보는 것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당장 옷부터 신경이 쓰였다. 집에서 거의 헐벗기 직전의 편한 복장으로 지내다 갖춰 입어야 했다. 행동 하나도 조심하게 되었고, 불편한 마음에 퇴근하면 자꾸 방안에만 머물렀다. 아마도 내가 신경 쓰듯이 장인, 장모님 역시 그랬으리라. 그렇게 한 해, 두해 흐르고 어느덧 그 세월이 10년이 다 되었다.


세월은 마법 같아서 어느 순간 본가처럼 편해졌다. 퇴근하고 와서도 거실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고 때론 너무 편한 자세로 있기도 했다. 그 사이 둘째도 태어나서 대식구가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서로 간 큰소리 하나 없이 지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아마도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장인, 장모님 모두 직장에 다녀서인 것 같다. 다들 바쁘니 평일에는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적당한 선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점은 배려심 많은 두 분의 마음 때문이었다. 늘 참고 인내하는 성숙한 어른을 곁에서 보고 배울 수 있어 내가 이룬 가정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장인어른, 장모님이랑 호칭 대신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니 나도 사위보다는 아들이 된 듯하다.


장인, 장모님이 2년 전 문경으로 떠나면서 자연스레 분가를 했다.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모습에 나 역시도 그랬다. 명절 때 방문하면 두 분은 얼마나 반갑게 맞이하는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있으면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철인처럼 건강했던 장인어른이 최근에 계속해서 몸이 좋지 못하다. 지리산 종주 때 헉헉대던 나와 달리 예순이 다된 나이에도 뛰어오르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누구보다 강한 분이기에 반드시 털고 일어나리라 믿는다. 수시로 가족 단톡방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최근에 장인어른은 아들과 함께 지리산에 다시 오르고 싶다고 했다. 분명 그 바람이 현실이 되리라.


아내와 결혼해서 사위가 되었지만, 그보다는 부모님이 한 분 더 생겼다. 앞으로도 사위 말고 아들처럼 오래오래 곁에서 함께하고 싶다.



보글보글 1월 4주 글감 '며느리, 사위, 사돈'입니다.


이전 늘봄유정 작가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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