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혼란한 유년기에 관해

최근 나의 혼란형 애착에 관해 깨닫고 애인씨와 얘기를 나눠보았다(일상글)

by 사람

어떤 영상을 보던 중 눈에 띄는 사실이 있었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이들은 부모님들을 회상할 때 부모님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좋았던 기억을 통합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원래 애착은 혼란형으로 추정하지만 상담을 통해 쌓아 올린 안정적인 부분들이 있어 현재 그 사이를 위태롭게 줄다리기 하고 있다. 만약 내가 나의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내 속엔 부모님과의 긍정적인 순간들은 커녕 사랑을 갈구하다 상처 받은 장면들만 떠올랐다. 하지만 왠지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이 나에게 저질렀던 행동들 중에 잘못된 행동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 손에 컸으나 제대로 된 인사나 부모와의 유대 관계를 만들지 않고 하루 아침에 떠나도록 한 것, 소리 높여 울 때 비웃으며 조롱한 것, 계속 혼자 놔두거나 학원이나 고모에게 양육을 떠맡긴 것, 같이 있을 때 나에겐 책을 읽도록 시키고 잠만 자거나 텔레비전만 본 것, 20살이 되면 당연히 대학 등록금만 주겠다고 말해왔고 그렇게 한 것, 나에게 유일하게 다정했던 고모를 만나고 올 때면 습관처럼 그에 대한 험담을 한 것, 한 마디의 상의도 교육도 없이 뜬금없이 매를 맞춘 것, 책을 읽을 때나 공부를 할 때만 옆에 있어준 것, 본인의 일터에서 만난 손님들에 대한 일을 욕과 높은 언성으로 말해온 어머니, 옆에서 암묵적으로 편을 들어주는 아버지, 어린 아이일 때부터 밥 먹 듯 들어왔던 코가 못 생겼다는 욕, 마지막으로 성인기 때 친형제에게 들었던 폭언과 폭력, 어그러진 대학 생활에 대해 '네가 이상해서 그렇다'라는 악 소리 섞인 말, 이후 전혀 그것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않고 먼저 안부조차 물어보지 않는 현재까지. 한 줄 요약하자면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진 어머니와 그 옆에서 똑같이 불안정하지만 말을 아끼는 아버지이다.)



아직 소화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나의 예민함이 상호작용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어떤 기질이든 부모로서 나의 부모를 만났다면 그들의 무책임함과 무지함에 안정적인 애착을 가질 수 없으리라 확언한다.



하지만 이미 지나온 일이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왔다. "그래도 사랑하셔서 그러셨을 거야, 그래도 부모님이잖아...." 그럼 부모를 바꾸는 거 어떻겠냐는 유치한 말이 떠오를 정도로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애착에 관해 애인씨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대화 도중 나는 문득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셨을까?"라고 물었다. 애인씨는 그에 뜬금없이 자신의 연애에 대해 말했다. 그러고는 "그렇게 미숙하게 표현했고 좋은 기억들만 있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분들을 사랑했어." 그렇다. 나의 부모 또한 어찌 되었든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도 나의 연애를 돌이켜보면 정말 미숙하고 방법을 모르고 안하무인 하게 사랑을 들이민 것이 맞고 그들도 나도 크고 작은 상처들을 주고 받았지만,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나요?"라고 말하면 당연히 "(지독히도)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다. 부모님께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와우.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누구에겐 아주 당연할 말이 나에게 폭죽과도 같은 안심을 주었다. 그리고 정말 대단한 건 "나도 나의 부모님을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짝짝짝짝. 아무리 내가 현재는 부모님과의 만남이 껄끄럽고 거리가 멀어도 그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지금은 내가 어른이 되어 그들과 이젠 같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나의 부모만의 분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동안의 행적을 나혼자 통째로 소화하느라 고생했지만 뭐.... 어쩌냐... 진짜 그 사람들은 도무지 책임질 수 없어 보이는데.



물론 그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주는 편지를 보낼 것이다. 사과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행동들이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진실이니까. 이로써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니, 또 다시 잠자는 것이 무서워져도 나는 나의 인생을 기어코 살아낼 것이다.

금요일엔 당장 취업 프로그램 예약이 나를 기다린다. 아자잣 화이팅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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