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The world after coronavirus>
안 쓰면 잊어버린다.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언어는, 영어는 특히나 그런 듯하다. 그나마 손에 쥘 만큼은 남아있던 익숙함도 이대로라면, 정말 먼지처럼 파스스 사라질 것 같았다. 슬슬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 이전 회사 동료가 개설한 프로젝트 모임에 가입했다. 이름하여 ‘내맘대로 취향수집’, 부제는 ‘영어 산문 매일 읽기’ 프로젝트. 습관 유도형 스터디 모임이다.
스터디 참여 방법은 심플 그 자체. 매일 영어 산문 1개를 읽고 취향에 맞는 표현을 찾아 게시판에 공유하면 된다. 각자 읽는 글도 자유, 올리는 표현도 자유다. 그래서 누군가는 전문 서적을, 나는 기사를 파고든다. ‘100일간 빠짐없이’라는 반강제적인(?) 조건 때문에 바빠도 잠을 줄여가며 꾸역꾸역 좋은 글을 찾고 읽게 된다. 공지, 인증, 피드백을 비롯한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된다. 코로나19 여파로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 언택트 스터디 문화다.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라임이 촥촥 달라붙으면서, 쉬운 비유가 담긴 영어 표현을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But even as the sea of red ink rises, companies would do well at this moment to keep the spotlight on the human toll of the public health crisis.” - Variety
“-ises”로 맞아떨어지는 압운에, 코로나 직격타를 맞은 영화계를 흑자(black ink)와 대비한 “적자(red ink)의 바다”로 표현했다. 인용한 버라이어티 기사처럼, 단어를 문학적으로 요리조리 갖고 노는 글을 즐겨 읽는다.
‘명문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뉴스레터 메일함을 뒤적거리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읽었다. 알고 보니 파이낸셜타임스가 팬데믹 시대를 맞아 코로나19 주요 커버리지를 #FTfreetoread 태그와 함께 무료로 공개한 것.
<사피엔스>, <호모데우스>로 유명한 저자가 코로나19 사태와 해결방향에 관해 글을 썼는데, 한 문장도 빠짐없이 명문이다. 요점은 크게 두 가지다. (1) 바이러스를 빌미 삼아, 국가기관 혹은 기업이 마치 ‘빅브라더’처럼 통제상황을 일상화할 위험을 경계해야 하고 (2) ‘믿음의 벨트’에 바탕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전 세계적인 연대가 바이러스 퇴치의 핵심 해결책이라는 것. 팬데믹 사태에 대응한 모범사례로 한국을 소개한 것은 덤.
다시 한번 꼭꼭 씹어먹을 겸, 내 마음에 들어온 영문장 12개(엄밀히 말하면 15개)를 직접 의역과 함께 정리해봤다. 원문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겼고, 요약으로 덧붙인 부분은 괄호로 표시했다. 인터넷에 풀버전 번역글도 많이 올라와 있으나, 꼭 원문을 읽어보길 바란다. 여러모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프로젝트 리더님께 감사할 따름.
*아래는 지난 3월 20일 파이낸셜타임스에서 무료로 공개한 원문의 문장을 뽑아 의역한 글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 요청에 따라 수정 혹은 삭제될 수 있음을 밝힙니다.
Yes, the storm will pass, humankind will survive, most of us will still be alive — but we will inhabit a different world.
(1) (항상 그래왔듯, 현재 ‘글로벌 위기'로 자리잡은 코로나19 사태 또한 언젠간 해결될 거다.) 폭풍은 지나가고, 인류는 생존하고, 우리 중 대부분이 살아남겠지만— 코로나 발생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will”을 반복하면서,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주장을 강조한다.
In this time of crisis, we face two particularly important choices.
(2) (개학 연기, 원격 근무 등 전례 없는 대규모 사회적 실험이 진행되는 가운데) 위기의 시대에서 우린 두 가지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첫째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의 권한에 관한 문제고, 둘째는 국수주의적인 고립과 전 세계적인 연대에 관한 문제다.
Many short-term emergency measures will become a fixture of life. That is the nature of emergencies. They fast-forward historical processes.
(3) (첫째,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의 권한 사이에서) 단기적으로 마련된 비상 대책의 상당수는 우리 생활 속에 고착될 거다. 그게 비상사태가 가진 본질이다. 비상사태는 마치 화면을 빠르게 되감듯 역사적 과정을 앞당긴다. 예전 같았으면 수년간의 심의를 거쳐 발효될 결정들이 단 몇 시간 안에 통과되는 거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와 맞닿는 문제 제기다. 여기에서도 초점은 ‘단기’적인 비상 대책이 본래 목적과 달리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
Not only because it might normalise the deployment of mass surveillance tools in countries that have so far rejected them, but even more so because it signifies a dramatic transition from “over the skin” to “under the skin” surveillance.
(4) 최근 몇 년간 정부와 기업은 더욱 정교해진 기술로 사람들을 추적하고, 감시하고, 조종해왔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오래된 ‘감시의 역사’ 속에서 전염병은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량 감시 기술 사용을 거부해오던 국가가 도구 배포를 정상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시의 초점이 “피부 겉에서 속으로” 극적인 전환을 맞을 수 있기에 더욱 중대한 문제다.
Now the government wants to know the temperature of your finger and the blood-pressure under its skin.
(5) 여태껏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고 링크를 클릭할 때, 정부는 우리 손가락이 정확히 무엇을 클릭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에선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이제 정부는 손가락 온도와 피부 아래 혈압까지 알고 싶어한다.
*이전 문장(“over the skin” to “under the skin”)과 연결해, 코로나를 빌미 삼아 예외상태가 지속될 수 있는 위험을 전방위적으로 표현했다.
It is crucial to remember that anger, joy, boredom and love are biological phenomena just like fever and a cough.
(6) (SF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기술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어느 정도로 감시당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동영상을 볼 때 나의 체온, 혈압 및 심박수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날 웃게 하는 것, 울게 하는 것, 분노하게 하는 것 또한 알아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분노, 기쁨, 지루함, 사랑과 같은 감정이 (감시선 상에 놓였을 땐) 열, 기침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현상 또는 시그널로 작용한다는 것. 만약 기침을 식별하는 기술이 있다면, 동일한 기술로 웃음 또한 식별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우리의 생체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하기 시작하면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감정을 예측할 뿐 아니라 조작하고,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팔 수 있게 될 거다. 그게 물건이든 정치인으로 내세워진 사람이든.
But temporary measures have a nasty habit of outlasting emergencies, especially as there is always a new emergency lurking on the horizon.
(7) 비상사태가 끝나면 생체 감시 또한 끝나는(끝나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비상사태로 행해진 임시 조치는 비상사태보다 오래 지속되는 나쁜 습성이 있다. 하나의 비상사태가 종식되어도, 언제나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비상사태가 도사리고 있기에.
*그야말로 비상사태의 영원한 굴레다. 다음 문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고국을 사례로 든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또는 제1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무력충돌 속에서 많은 임시 조치들이 행해졌으나 아직도 대부분 폐지되지 않았다며.
Asking people to choose between privacy and health is, in fact, the very root of the problem. Because this is a false choice.
(8) (바이러스 이슈에서 많은 사람들은 프라이버시와 건강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보통 후자를 택하는데) 사실 사람들에게 프라이버시와 건강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상황이 문제의 근원이다. 잘못된 선택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라이버시와 건강이라는 가치를 모두 누릴 수 있고,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 전체주의적인 감시 체제 말고 시민들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 최근 몇 주간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성공적인 모범사례를 보였다. 이들 국가는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일부 사용했으나, 광범위한 감염 진단 테스트, 투명한 정보 공개, 전국민의 적극적인 협조에 훨씬 더 크게 의존했다.
Today billions of people daily wash their hands, not because they are afraid of the soap police, but rather because they understand the facts.
(9) 오늘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손을 씻는 이유는 ‘비누 경찰’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비누가 위생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체계와 권력’이 아닌 ‘상식과 이성’에 의존해 방역 지침을 따른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The coronavirus epidemic is thus a major test of citizenship.
(10) 그러나 높은 수준의 준수와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믿고, 공공기관을 믿고, 미디어를 믿어야 한다. 수년에 걸쳐 무너진 신뢰가 하룻밤 새 재건될 순 없으나, 지금은 위기의 시대다.
덧붙여 감시 기술은 정부뿐 아니라 개인이 정부를 감시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래서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시민의 권한을 시험하는 무대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되뇌면서 가장 소중한 자유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If later on the focus of the epidemic shifts, help could start flowing in the opposite direction.
(11) (둘째, 국수주의적인 고립과 전 세계적인 연대 사이에서) 전 세계적으로 의료 인력을 모으기 위한 노력 또한 고려해볼 수 있다. 현재 코로나 여파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국가가 크게 받는 지역에 자국 의료진을 파견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필요한 도움을 적시에 제공함과 동시에 귀중한 경험을 얻기 위함이다. 시간이 흘러 전염병이 이동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누구든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받는 처지로 상황이 바뀔 수 있기에.
Will we travel down the route of disunity, or will we adopt the path of global solidarity?
(12) 모든 위기는 기회다. 전 세계적 분열이 초래할 위험을 깨닫는 데 바이러스가 도움이 되길 바라야만 한다. 이제 인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분열의 내리막길을 걸을 것인가, 연대의 길을 택할 것인가?
*‘밑으로 타고 내려오다(travel down)’, ‘채택하다(adopt)’의 상반된 쓰임이 눈에 띈다. 내리막길에선 굳이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반면 무언갈 채택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전자가 수동성이 내포된 ‘무방비’ 느낌이라면, 후자는 능동성이 내포된 ‘전투’ 느낌이랄까. 원문에 부연설명이 이어지는데, 끝까지 참 힘을 놓지 않는 글이다. #FTfreetor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