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우드, 글로스터셔
스캔하기 귀찮아서 고릿적에 그려놨던 그림 중에 뭐 대신 올릴 게 없나 하다가 그냥 글을 좀 길게 쓰기로 했다.
나는 영국 남서부 글로스터셔에 있는 스트라우드라는 작은 도시에 산다.
관광객들이 옥스퍼드에서 바쓰를 도는 코츠월드 버스 투어 할 때 비켜가는 워킹 타운. 관광지는 아니지만, 계곡에 위치한 동네라서 창문 밖 풍경은 참 아름답다. 강촌쯤 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코츠월드 특유의 오래된 돌로 지은 집도 많고, 숲, 소 방목장 옆에서 골프 치는 커먼(공유지), 강, 시냇가, 운하, 트래킹 코스, 소형 비행장(경비행기와 무동력 비행기 용)이 있어서 보통 주말에 야외활동을 하러 많이 온다.
사실, (자랑이지만) 프린스 찰스와 프린세스 안, 안의 딸 가족들이 이 근처에 산다. 뭐, 내 생활에 별 영향은 안 끼친다만. 유명인들이 가끔 눈에 띈다.
이 동네는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도시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다. 런던, 버밍햄, 브리스톨같은 데서 일하다가 가족 수가 늘어나면서 이주한 사람들.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에 교육 평준화 정책으로 많이 없앤 그래머 스쿨(시험 보고 들어가는 명문 공립학교)도 있고, 대안학교(이것도 사립이라 일 년 학비가 1000만 원 대... ㅠㅠ), 사립학교-기숙학교 같은 게 주변에 많다. 그래서 애들 교육이나 생활환경의 이유로 이 곳으로 많이 이주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육열이 쩐다. 한국처럼 어릴 때부터 학원을 하루 종일 보내는 건 아니지만, 스포츠클럽이나 예술활동 같은 것에 사교육비를 꽤 쓴다. 중학교(세컨더리 스쿨) 말에 보는 입시시험(GCSC) 전에 수학이나 과학 과외도 많이 시키고, 좋은 초등학교를 보내려고 병설 어린이집에 일 년 전부터 아이를 등록시켜 놓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스쿨 커미티 혹은 트러스티-라고 부르는 어머니회 같은 것이 있는데, 친하게 지내면 정보도 얻고 좋긴 한데... 약간 무, 무섭다. 한국이랑 다를 거 없다. 이런 거는.
다만, 나의 유년 시절과 비교해서 영국- 특히 이 동네의 아이들의 삶에서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현격하게 많고(대부분의 직장은 5시 칼! 퇴근이므로), 그래서 가족 간의 유대관계가 굉장히 좋다는 점.
그리고, 야외활동을 많이 한다는 점.
그게 서울에서의 나의 삶과 다른 점이다.
내 어린 시절이 학업으로만 점철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초등학교 고학년 이 후로는 부모보다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었고, 실외보다는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취미라고 하면... 누워서 귤 까먹으며 만화책 읽으며 라디오 듣기 정도. 물론 다른 것도 하면서 놀았지만, 청소년기- 하면 제일 먼저 생각 나는 게 시험 끝나고 늘어지게 만화책 읽던 것이라. 그것은 그것대로 재미도 있었고, 지나간 삶에 대해 후회나 아쉬움은 없지만, 한 가지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성장기에 더 많이 밖에 나가 놀고, 운동도 많이 하고, 스스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노는 삶을 더 오래 더 적극적으로 영위할 걸 하는 점이다. 이 동네 아이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고, 창 밖으로 아파트 옆 동 창문이 아니라 숲 전경이 보이는 곳에서, 10리 밖 국민학교를 논밭 산길을 지나 매일 걸어 다녔다는 6.25세대처럼, 3km 밖의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함께 숲길을 걸어 집에 오면서 나는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졌다.
외국 시골 생활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어들었다. 지금은 꽤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아마도 대부부의 이민자들이 그러하듯이.
이 동네에 사는 전형적인 주민의 느낌....은 이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