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왜 항저우에 있는가

널 떠날 거야, 항저우

by 홍흔흔
愛_ 1


매번 아직도 정 떨어질 일이 남았다고?! 아니, 아직도 여기에 떨어질 정이 남아있다고? 항저우 너도, 이런 나도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왜 아직도 항저우에 있는가? 그건 오롯이 지금의 남편 빈빈이 이곳에 있는 탓이다.


남편은 멘붕의 대학원 등록이 끝난 후, 전공 수업을 갔던 첫날 만났다. 첫 수업이라서 앞으로 우리 학번의 반장을 뽑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남편이 반장이 되었고, 쉬는 시간에 반장 번호를 따러 갔다. 작은 수첩을 들고, ‘네 이름이랑 전화번호 좀 알려줘’라고 했고, 남편이 자기 이름이랑 번호를 적어줬다. 하지만 남편은 엄청난 악필이었고…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자에, ‘네가 그렇게 글씨를 쓰면 난 알아볼 수 없어‘라며 몇 번이고 퇴짜를 놨다. 어렵게 받은 연락처로 메신저 친구 추가를 했고, 뭔가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연락해서 물어봤다.


그때는 얼른 동기들 무리에 끼고 싶기도 했고, 하얼빈에서도 중국인 친구를 잘 사귀었기 때문에 뭐든 엄청 적극적인 상태였다. 그러던 중, 다 같이 항저우 마라톤을 신청한다며 신청자를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마라톤을 해 본 적도, 평소에 러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주 호기롭게 덥석 11km 마라톤을 같이 신청했다. 마라톤이 한 달 남은 상황에서, 마라톤 전에 연습을 해야겠다.. 싶은 생각에 반장한테 연락했다. ‘너도 같이 신청했잖아, 나 마라톤은 처음이라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같이 하자!’고 그렇게 밤마다 같이 운동장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동장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같이 밥을 먹고, 점점 만나는 시간이 늘어났다.


빈빈은 다정하고 동글동글한 사람이었다. 예민하고 뾰족한 나와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모두와 잘 지냈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도 느껴지지 않는 친구였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라 함은, 단순한 메신저 오타도 외국인이라 몰라서 틀렸다가 아닌 단순한 오타로 봐주고, 모르는 게 있으면 외국인이라서 몰라가 아니라 설명을 해줬다. 그래서 나도 빈빈과는 더 편하게 사소한 얘기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호기심도 상당한 친구였는데, 그런 호기심 때문인지, 외국인 필수 과목으로 내가 듣고 있던 중국어 수업과 중국 문화 수업이 궁금하다며 나를 따라서 내 수업에 가기 시작했다. 이 수업은 내 전공이 있던 캠퍼스가 아닌 다른 캠퍼스에서 진행됐다.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학교 셔틀버스를 타거나, 버스, 자전거 등을 타고 가야 했다. 수업은 2~3시간씩 진행됐는데, 다양한 전공의 외국인들이 다 가능한 시간에 맞추어 개설되는 수업이라 보통 저녁 시간으로 수업이 배정되었고, 끝나면 9시 정도가 되었다. 만약에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한두 번이면 될 텐데, 거의 항상 같이 가주거나 같이 못 가면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왔다. 그래서 ‘아! 이 녀석, 나한테 호감이 있다!’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나도 항상 이 친구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얘한테 호감이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빈빈의 옆구리를 찔러서 고백을 받아냈다.



그 뒤로 우리는 껌딱지가 되었고, 그건 12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 앞에서 제일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존재였고, 빈빈은 모르겠지만 나는 빈빈 덕분에 조금씩 무던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아마도). 남편은 지금까지도 한국어를 잘 못 한다. 연애 기간이었나, 결혼 후였나, 한국어를 배우려는 시도를 했으나 일의 고단함과 체력 이슈로 그만두었다. 그래서 남편이랑 한국에 가면 아직도 내가 전속 통역사로 활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무료 봉사이기 때문에, 통역은 내 마음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남편을 만났던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너는 남편 하나는 참 잘 만났다’고 했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가끔 친구들한테 남편이 이래저래 했다 해도, 나보다 남편 편을 드는 친구들을 보면 서운하기도 하고, 그래도 내가 참 좋은 사람이랑 살고 있구나 싶다.


그래서 중국 살이가 이렇게 똥 같은데도, 다 싫은데도, 딱 하나 좋은 것 때문에 아직도 여기 항저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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