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2017년 책 52권 읽기 일곱, 여덟, 아홉 번째 책입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두 아이에게 편식은 나쁜 습관이라 못하게 하면서 그동안 저의 책 읽기는 편식이었습니다.
너무 자기계발서 위주로만 읽었습니다.
어느 순간 경영학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경영과 인문학을 연결 지을 수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요?
아님 저의 독서량이 조금 늘어서 일까요?
무엇보다 작년에 읽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통해서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처음으로 인문학에 도전하자는 결심을 했고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참 오래 걸렸습니다.
페북 히스토리를 통해 제가 2011년부터 인문학에 도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려 6년이 지나고 나서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나에게 어렵습니다.
군대 있을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은 이후로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은 작년 추석 무렵에 읽은 '덕혜옹주'인 것 같네요.
덕혜옹주는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아서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구조가 복잡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초반부터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네요. 게다가 낯선 외국 이름들 또 약식으로 부르는 이름까지...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해서 책을 읽습니다. 자주 그리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노트에 간략히 적어 가면서 책을 읽어 내려갑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소설은 우리의 우뇌를 자극하고 발달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진과 같이 눈으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화가가 되었고 머리 속에서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안나 카레니나 1권의 장면 중...)
레닌이 키티를 만나러 스케이트장으로 가서 그녀를 보고 느끼는 장면
키티가 안나를 만나서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는 장면
브론스키 무도회에서 안나를 처음 보고 그녀를 묘사하는 장면
안나가 브론스키를 알게 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역에서 마중 나온 남편을 보고 느끼는 감정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인물들의 모습을 내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며 그리게 됩니다. 매 순간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빙의가 되어 그가 상대에게 느끼는 그 감정들을 내가 직접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감정들은 소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소설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설 연휴 3일 동안 전권(3권으로 구성됨)을 모두 읽으려 했는데 저의 욕심인 것 같습니다.
새벽까지 읽고 나서야 1권을 다 읽었습니다.
막 잠에서 깨었을 때 책에 대한 여운도 남았고 생각들도 정리가 되었었는데 한 참이 지난 지금 다시 책의 내용을 정리하려니 쉽지가 않네요.
안나 카레니나 1권은 1부, 2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권의 내용을 정리하기에 앞서 시대적 배경을 간략히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C(1800년대) 중반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귀족사회생활이 배경입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아직 중세 봉건제적인 계급사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요. 유럽에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직전이고 유럽에 각 국가 간의 경계가 완전히 자리 잡기 이전으로 보입니다. 소소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볼 때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러시아인 등 국가의 중요성보다는 계급(신분)이 더 중요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당시 유럽의 귀족사회가 가톨릭을 기반으로 움직인 것과 같이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를 중심으로 사회/경제/문화가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정/결혼/사랑은 그들의 계급과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까요.
그 가운데 지주/농민/상인들과 신분에 따른 갈등을 통해 러시아가 사회주의 체제로의 통합으로 통해 소비에트 연방으로 통합되는 배경을 읽을 수 있었고 귀족들 가운데서도 제도의 구속보다는 진정한 사랑을 찾고자 하는 인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소설의 내용을 정리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1권의 등장인물의 갈등구조를 보면...
오블론스키(스티바)를 중심으로 그 아내 돌리와 가정교사와의 갈등구조
돌리의 동생인 키티를 중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오블론스키의 친구 레빈과 키티가 사랑하는 브론스키와의 삼각관계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키티와 바렌카의 갈등구조
주인공인 안나를 중심으로 브론스키와 남편인 카레닌과의 갈등구조
1권을 마치고 난 후 바로 2권 읽기에 들어갔으나 주중에 좀처럼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불타는 금요일 다른 유혹을 물리치고 책 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자정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2권을 다 읽었습니다.
2권의 갈등구조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주요 인물들은 1권에서 이미 등장한 인물들입니다.
2권에서는 각 주요 인물에 대해 각 개인별로 이야기가 전개가 됩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모스크바(도심)에서 시골 그리고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확대가 됩니다.
1권이 주로 인물들 간의 관계(사랑)의 연결고리를 통한 갈등구조를 보인 것에 비해
2권은 등장인물의 개인이 '사랑' '일' '권력' '제도' '종교' '사상' '죽음'에 대한 갈등구조입니다.
2권의 키워드는 '카르트 블랑슈'입니다.
'카르트 블량슈'는 블론스키의 친구인 세로푸홉스코이가 브론스키에게 던진 말입니다. 의미는 '행동의 자유'입니다. 톨스토이는 어떤 의미에서 브론스키에게 이 말을 던졌을까요?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시점의 브론스키에게 새롭게 등장한 과거의 친구... 그는 브론스키가 지향하던 인물입니다. 권력과 일을 위해서는 여자나 결혼은 하나의 도구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브론스키에게 던질 말이 '카르트 블량슈'입니다.
왜 이 말이 기억에 남아서 책을 읽으면서 수첩에 기록을 했을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할 때는 내 사랑과 그 사람만 보이는 것은 시대와 국가를 넘어선 사실인가 봅니다. 1권에서의 사랑에 대한 갈등은 2권으로 넘어오면서 그 사랑이 결국은 다 이루어지면서 갈등구조가 정리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블론스키와 돌리 사이의 불화도 정리가 되었고, 레빈과 키티의 사랑도 결국은 이루어졌고, 그리고 브론스키와 안나의 불같은 사랑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블론스키와 돌리를 제외하면 뭔가 온전치 못하고 불안한 상태로 그 사랑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랑을 얻지 못했을 때는 사랑이면 다 일 것 같았지만... 사랑을 얻고 난 이후에는 새로운 것들이 삶을 힘들게 하는 변수로 작용합니다. 마지막 3권에서 그 사랑들이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궁금합니다.
마지막 3권입니다.
3권은 안나와 레빈을 평행 선상에 놓고 주변 인물들에 대한 갈등구조입니다.
2권에서 안나와 레빈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안나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브론스키)을 얻은 것에 비해
레빈은 주변의 상황에 맞춰가면서 사랑(키티)을 얻게 되었습니다.
3권에서는 안나와 레빈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안나는 결국 세상과 사랑과의 단절을 통해 죽음(자살)을 선택하게 되고
레빈은 아주 천천히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책의 마지막 장입니다.
피곤함과 기쁨이 몰려옵니다.
우선 나 자신에게 칭찬과 격려를 합니다. 장하다고... 잘 했다고...
그리고 마지막 여운이 가시기 전에 책의 내용을 정리를 합니다.
내 삶은 이제, 내 삶 전체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와 상관없이, 매 순간이 예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이라는 확실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삶에 그것을 불어넣을 힘이 있다!
레빈의 삶입니다.
그는 이 삶을 얻기까지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사랑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사회제도(농노해방)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신앙과 믿음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고민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와 상관없이 매 순간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느리지만 삶에서 가치를 찾아가며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 안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랑을 선택을 했지만 결국은 그 사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브론스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인해 집착이 커졌고 결국은 브론스키에 대한 복수를 생각합니다. 그를 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죽음입니다. 그가 나를 찾지만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 브론스키의 삶을 생각합니다. 그것도 둘의 사랑이 운명적으로 시작이 되었던 기차역에서...
어쩌면 둘의 첫 만남의 장면에서 기차역에서 죽은 역무원의 죽음으로 인해 둘의 사랑이 시작이 되었고, 그 기차역에서 둘의 사랑이 끝이 나게 됩니다. 결국 브론스키는 사랑의 아픔을 잊고자 기차역에서 러시아-터기 전쟁터로 향하는 것으로 정리가 됩니다. 그 기차역에서 브론스키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요? 안나와 같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용기는 없었나 봅니다. 때문에 전쟁을 통해 자신이 죽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브론스키를 바라보니 그 역시 사랑의 피해자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안나의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녀의 선택은 죽음이었을까? 복수의 방법이 죽음밖에 없었나? 왜 복수를 생각했을까? 브론스키와의 사랑에서 그녀가 얻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그녀와 대비되는 레빈의 삶에서와 같이 사랑과 가족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만약 시대적 배경이 오늘날이었다면 그녀의 선택은 달라졌겠지? 공간적 배경이 러시아가 아닌 이탈리아나 영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러시아 정교회와 클럽 문화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별로 없구나? 그녀의 죽음은 정녕 그녀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인가?
아마 이 책은 다시 또 시간을 내어서 읽어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수첩에 이것저것 기록한 것은 많은데 아직 생각으로 정리가 덜 되었습니다.
이 글을 다 정리하고 난 후에 아마 '책은 도끼다'에서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해설을 다시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이 책은 다른 책 보다 더 많이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각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해당 인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책에 대한 몰입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모든 고전이나 인문학이 이 책과 같다면 많은 후회를 할 것 같습니다.
왜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지 않았는지를 두고...
이 책은 그냥 소설이 아닙니다.
사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지리적인 위치를 제외하고는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러시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왜 이 책을 러시아 사회의 백과사전이라고도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의 갈등구조를 통해 사랑, 사상, 죽음, 종교, 귀족, 농노, 농촌, 도시, 교육 등 당시 러시아의 사회생활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