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피오르드 크루즈 타기
스타방에르의 마지막 날. 근처에 더 가보고 싶은 하이킹 코스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애매했다. 가고 오는 버스가 각각 하나뿐인 곳도 있었고, 자가용이 없다면 접근이 힘든 곳들도 있었다. 노르웨이 피오르드 여행은 차 없는 뚜벅이들에게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물론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이틀 연속 하이킹을 한다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마지막 날은 좀 더 몸이 편한 일정을 잡았다. 프레이케스톨렌이 있는 뤼세 피오르드를 구경하려면 하이킹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하이킹 없이 피오르드 계곡을 따라 운행하는 여객선을 타는 방법도 있다. 노르웨이 패키지 여행을 가게 되면 필수적으로 끼어 있는 코스 중 하나이다. 배를 타니까 몸도 편하고 시간도 오래 안 걸리며, 위험하지 않으니까.
아침을 먹고 여객선을 타는 선착장으로 가서 근처를 둘러보았다. 여행자 안내 센터도 있고, 선착장 앞에 작은 기념품 상점도 있다. 기념품 상점이 있는 곳 근처에 해군이 그려진 그림이 있는데, 그 내용이 궁금한 아빠는 앞에 서 있는 외국인을 보면서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물어보니, 옛날 노르웨이가 타국과 전쟁했을 때 그때 싸운 해군을 그린 거라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노르웨이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침공받았다고 하는데, 그때의 그림을 그렸었던 것 같다.
여행자 센터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팜플렛들도 구경하고 배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여행자 센터를 떠올리면 상업적 프로그램으로 지나치게 연결하려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는데, 노르웨이에 있으면서 방문했던 곳들은 모두 성심성의껏 열심히 모든 정보를 알아봐 줬기에 좋은 기억들 뿐이다. 심지어 노르웨이 안의 도시간 버스나 대중교통 등은 구글 지도나 인터넷으로 검색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서, 여행자 센터에 방문해 자세한 것을 확인하고 가면 좋다.
시간이 되어 여객선이 도착해 배에 오른다. 크루즈 전체 시간은 3시간 조금 더 되서 생각만큼 길지는 않다. 날이 아주 좋은 여름이지만 뱃전에서는 찬바람이 쌩쌩 불기 때문에 겉옷을 꼭 챙기는 것이 좋다. 겉옷이 없다면 추위에 바들바들 떨다가 모든 것을 유리창 너머를 통해서만 봐야할 수도 있다.
배는 스타방에르를 출발해 바다로 나아간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근처에 있는 작은 바위섬들과 다양한 해안선들이 보인다. 모래 해변은 없지만 투박한 바위와 초목이 어우러진 곳에 집이 멋들어지게 세워져 있다. 운 좋게 날씨가 완벽했던 탓에, 아주 멀리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하이킹 할 때도 볼 수 있었던 뤼세 피오르드 다리를 아래쪽에서 지난다. 다리를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뤼세피오르드 구간이다. 멀리 보이는 바위 절벽과 나무들이 뒤섞여, 아래쪽의 집들은 작은 점들로 보일 정도이다. 규모가 가늠조차 안되는 거대한 크기이다. 해안 쪽에 가까이 갈 때는 집과 그 근처를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단순히 배로 왔다갔다만 하는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이런저런 행사 같은 것들이 있다. 좁은 계곡에 닿을 정도로 배를 가까이 대기도 하고, 염소들에게 밥을 주기도 한다. 인식표가 붙어 있는 것이 야생 산양인지 아니면 근처 농장의 동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배는 능숙하게 바위 해안에 가까이 가고 승무원이 양동이에서 먹이를 꺼내 뿌려준다.
배는 계곡을 지나다가 프레이케스톨렌 바로 아래쪽을 지나간다. 지나갈 때 위를 올려다보면 사각형으로 깎아낸 듯한 절벽이 보인다. 위에서 봤을땐 아찔한 느낌에 머리도 내밀지 못했던 곳을 아래쪽에서 보니 느낌이 새롭다. 어떻게 저렇게 딱 사각형으로 자리가 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배는 피오르드 끝까지 가지는 않고 중간까지만 갔다가 돌아온다. 돌아는 곳 근처로 가면 폭포로 간다. 수량이 꽤 많은 폭포가 있는데 맑은 물이 세차게 쏟아진다. 배는 이곳에 가까이 가서 양동이를 대고 물을 받아 승객들에게 한 컵씩 나누어 준다. 피오르드 여행 중에 산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는 것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맨 처음엔 물을 챙겼는데 다른 사람들이 물을 떠서 마시는 것을 보고 다음부터는 빈 병을 챙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물은 무거우니까.
피오르드는 빙하가 오랜 시간 동안 거대한 바위를 하강 침식하면서 생긴다 한다. 이곳에서 피오르드 주위의 바위산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생기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먼 옛날 상상도 못할 만큼 거대한 빙하가 있었을 피오르드를 구경하는 사이 배는 방향을 돌려 다시 스타방에르로 돌아온다. 선착장은 작지만 배는 활기차게 움직인다.
여객선 구경을 하고 나서 선착장 근처의 골목길을 조금 돌아본다. 지극히 사람들이 사는 것 같은 현실적인 집들이 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약간씩 다른 집들과 골목 너머로, 저 멀리 바위산이 펼쳐져 있다.
스타방에르의 마지막 날이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부모님과 다른 곳을 가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