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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Sep 19. 2021

출근 중에 지하철이 고장난다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갑작스런 불행

나는 출근에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오래 걸리는 전설적인 기록들을 생각하면 이정도면 괜찮은 시간 아닐까. 출근은 9시까지 해야 하니 집에서는 7 50분쯤 나온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은 짧지만 도보 이동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걸려서 1시간 약간  되는 시간에 출근을 마칠  있다.




그래서 목요일에도 으레 나가던 시간대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까운 역으로 갔다. 원래 아침의 4호선 특히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까지 가는 노선은 혼잡에서도 이런 혼잡이 없을 지경이다. 는 이 이상으로 혼잡한 곳을 본 적이 없다. 자리에 서서 가방 들고  핸드폰  공간만 있어서, 심지어는 책도  수가 없다. 그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걸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개찰구에 카드 찍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많지만 지하철이 약간 연착되면 이정도로 많을 수 있겠다 싶은 정도이다. 열차 운행 예정을 보니 열차 3 개가 일렬로 줄을 서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운행이 정상화 되면 사람들이 빨리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이 많아도 열차가 연달아 실어 나가면 될 것 아닌가. 결국 줄을 서고 기다리기로 한다. 방송에서는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열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까  처음에 봤던 열차 운행 안내 스크린에 있는 열차들에 변화가 없다. 변화는 없는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며 줄을 선다. 점점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웅성웅성 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이상 마땅히   있는 것이 없다. 이미 승강장 까지 들어왔는데 다시 올라간다는 것은 힘든 것은 둘째치고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오래 기다렸으니 전철이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사실 여태까지 얼마나 기다렸느냐와 전철이  운행할 것이냐는 전혀 논리적 상관이 없다. 그래도 그렇게 믿는다. 믿고 으니까.




전철은 안 오고, 사람은 쌓인다.




출근 시간대 지하철이란 조금이라도 열차가 늦어지거나 배차 간격이 이상해지면 사람들이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마냥 쌓이게 되어 있어서 이미 승강장 내부는 겨우겨우 줄의 형태를 유지한 사람들로 들어차 있는 상태이다.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 사람들이 여기 저기 전화를 돌리고, 기념촬영을 한다. 그때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전 지하철 역 쪽에 문제가 있어서 열차 운행이 중단된 상태이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달라고 한다.




방송과 동시에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한다. 승강장을 나와 다시 개찰구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줄이 길어진 나머지 계단에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승강장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다가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 나가는 사이, 방금 역에 들어오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묻는다. 열차가 고장 났대요. 환불을 받기 위해서인지 혹은 교통지연 증명을 하기 위해서인지 역무실은 안부터 밖까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린다.




일단 열차 고장으로 늦을 것 같다고 회사에는 말한 뒤, 이제 어떻게 출근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택시를 이용할 수 있지만 택시를 잡는 것부터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낫기에 일단 어떻게든 괜찮은 버스 노선을 검색한다. 좀 복잡하긴 하지만 그나마 나은 버스 노선을 검색하고 정류장으로 가다가 깨닫는다. 방금 전에 승강장에서 나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보통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은 나만의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모두의 판단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으로 갔으니 버스 정류장이 정상일 리가 없다. 도로 사이에 있는 버스 정류장 위에 몇십 분 동안 출근 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몰려들어 서 있다. 정류장 위에 서 있는 모습 자체가 출근 전철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다. 바닥이 보이지 않고 검은 머리카락만 보이는 그 모습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기념 사진을 찍는다.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달려가지만 다가오는 버스가 이미 만원이다. 그렇다. 지금 이 역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역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버스는 절대 못 탈것 같은 생각에 진짜 택시를 타야 하나 슬슬 멘붕이 오기 시작하지만 침착하게 생각해 본다. 문득, 지나가는 사람이 지하철 탈수 있어 지하철 타자,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혹시 해서 지도 어플로 실시간 지하철 운행정보를 검색해 본다. 지하철이 운행하고 있다. 아니 방금 전에는 운행 고장으로 언제 해결이 될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도 버스는 못 타고, 택시도 못 탄다. 결국 남는 선택은 다시 지하철 역으로 가 보는 것이다. 다시 온 길을 돌아서 지하철 역으로 가 본다. 지하철이 정상 운행하고 있다. 다행이다.




사실 어쩌면 몰려든 승객을 분산하기 위한 역무원의 큰 그림 아니었을까 하는 짓궂은 생각마저 들지만, 어쨌든 다행히 예상보다 많이 늦지는 않게 지하철을 탄다. 독서 모임 단톡방에 지하철 운행 이야기가 올라온다. 근처 사는 사람들이 모두 불편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KTX를 놓친 사람도 있다. 나도 비록 지각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큰 고난은 겪지 않았으니 나 정도면 아주 운이 좋은 일일 것이다.




겨우겨우 운행하는 지하철에 올라 설 자리를 확보하면서,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린 것을 언제 봤던가 생각해본다. 옛날 월드컵 중계를 야외에서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릴 때나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본 북적이는 인파와 지각은, 어렴풋이 남아 있는 옛날 일까지도 기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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