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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냉장고에 마들렌이 생긴 이유

나는 그걸 보고 웃음지었다

by 문현준

화장실을 갔다가 사무실에 들어가니 다른 사람이 아이스팩을 들고 돌아다닌다. 아이스팩이 들어 있는 물건이 올 일이 있었던가, 싶었는데 물을 뜨기 위해 냉장고 옆 정수기로 가니, 간식이 담긴 듯한 종이상자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대리님 마들렌좀 드셔 보실래요 하는 말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종이상자 안에 마들렌이 담겨 있다. 하나 꺼내 열어 보니 형형색색의 마들렌이 가지런히 담겨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아이스팩을 들고 다니던 사람이, 대리님 엄청 좋아하시네요 하면서 신기해한다. 나는 마들렌 하나를 자리로 가져가 먹어 보았다. 아직 냉동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마들렌이 조금은 딱딱하게 이에 닿아 올 때, 지난 주의 일이 생각났다.




중국 협력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귀국해 회사를 방문한 탓에, 그날 갑자기 당일 회식이 결정되었다. 적당히 뺄 수 있는 회식과 뺄 수 없는 회식이 있다면 아마 후자일 것이 뻔해서, 우리는 어버버 하는 사이에 회식에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과 밥을 먹는데 중식집에 간다는 것은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으로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여하튼 인터넷을 통해서만 이야기 하던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흔히 피라미드 밑바닥의 사람들이 할 만한 일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음식을 배분하고, 술을 따르고, 술을 피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면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맞춰 보았다. 그런 우리를 보면서 협력업체 사람들은 요새 젊은 사람들 답지 않게 이런걸 열심히 한다면서, 사람을 잘 뽑았다면서 칭찬을 늘어놓는다.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고,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유일한 여직원인 사람에게 질문이 주어진다. 유일한 여직원으로 일하면서 아쉬운 것이 무엇이냐, 회사에 불만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을 듣고 나서 나는 먹던 음식을 흘려낼 뻔한 것을 조용히 숨겼다. 회사에 불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경직된 문화와 부조리를 이야기 했다가 뒤끝이 좋지 않게 마무리되고 지금은 대학원 준비를 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이런 질문은 전혀 진의를 다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솔직한 이야기도 나올 수 없고, 솔직한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질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숨기고 적당히 이유를 골라잡는 것을 관람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만약 그것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애초에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순간 나에게 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 질문을 듣고 나니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졌다. 연차도 없이 1년 넘게 일하다가 생긴 사람들이 연차 쓰는데 눈치를 본다면 그건 내 착각인지, 왜 사람들이 저녁이 되면 집 갈 생각이 아니라 집에 안 가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지, 지금 부장들의 위치가 그 아래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동기가 된다고 생각하는지,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으로 군대를 꼽는다면 그걸 어떻게 해석하길 바라는 것인지, 생각만 하고 말하지 않을, 앞으로도 말할 일 없을 그런 대답들.




유일한 여직원의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대답은 아주 현명했다. 회사에 남자들밖에 없는데 달달한 간식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대표는 달달한 것이 뭔지, 마들렌 같은 것인지, 마들렌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았다. 여직원이 마들렌을 좋아한다고 하자,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냉장고에 마들렌이 생긴 이유였다.




그 마들렌을 보자니, 그때의 대화와 그 상황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그것이 내가 웃은 이유였다.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질문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대답도, 솔직하지 않은 대답에서 온 마들렌도, 그 어떤 것도 솔직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라서.




문득 내 웃음을 보고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옛날에 있던 일이 또 떠올랐다. 예전에 같이 일하다가 퇴사한 나이차이 얼마 안 나는 윗사람이, 내가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급 임명장을 받았었다. 그 사람은 임명장을 보고 웃으면서 임명장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때 그 사진 찍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이 이곳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니었다. 임명장이 재밌어서 찍은 것이었다. 뿌듯해서가 아니라, 그게 재밌어서.




어쩌면 그때 내가 보았던 웃음을, 임명장이 아닌 마들렌을 보면서, 지금은 내가 짓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건의사항을 말해보라는, 솔직해 질 수 없는 질문을 하고 나서, 회사 냉장고에는 마들렌이 생겼다. 2021 0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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