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가 걷어차이는 느낌
내 입으로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나는 꽤 건강한 편이다. 천식이 있었지만 약을 안 쓴지 오래되었고, 비염도 있지만 심하면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보통 낫는다. 관절이 아프다던가 한 것도 없어서 병원도 별로 안갔다. 우리 가족 중에 내가 가장 보험료를 덜 타먹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허약한 체질로 힘들어 할 때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체질이 약하여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안 좋아진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위가 안 좋아지니 소화도 잘 안되고 쉽게 체해서 기력이 없고 몸이 안좋아져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 위가 안 좋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최근에 몇 년간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안 좋아진다 라는 느낌이 이런걸까 싶었다. 업무적으로는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들어서 아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었다.
작년 회사에 여름휴가 이외에 개인 사정으로 쓸 수 있던 휴가가 없던 시절(어떻게 휴가가 없을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나도 그러게요 하고 대답해드리며), 함께 일하던 사람이 몇 년을 그렇게 일하다가 도저히 바뀌는 것이 없다고 느껴서 퇴사했다. 그 뒤로 두 명이 더 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라곤 없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올해 휴가가 생기면서 부장 중에 한 명이 대표에게 휴가를 2일 붙여서 가족과 제주도를 가고 싶다고 했고, 대표는 허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표 없이 점심 먹는 자리에서 부장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새로 온 두 사람이 있는 자리였다. 나는 제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너도 2일 붙여서 휴가 쓴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부장에게, 지금 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이야기 인 것 같다고, 겨우겨우 대답했다.
휴가에 관해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은 확인한 부장들은 좌우지간 대표와 휴가 사용에 대한 확실한 확인을 받으려 했고, 나는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메일을 하나 드릴테니 메일을 보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냐 했다.
나와 이전에 일하던 사람은 여태까지 회사가 어떤 곳이었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니 그렇다 치는데, 지금 온 지 몇 달 안된 사람들이 서로서로 눈치보면서 휴가 못 쓰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이제 앞으로도 이 모습이 계속될거고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까지가 메일에 쓸 수 있었던 이야기.
맨 처음 대표와 면접을 했을 때 회사 사람들에게 휴가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던 사람이, 누가 결혼해서 신혼여행 준것 5일을 하루 휴일이 껴 있다고 자르냐. 진짜 휴가를 못 챙겨 줘서 미안한 것이 맞느냐. 휴가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베풀어 주는 것으로 생각하니 당연히 눈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가 새로운 사람들한테 전해지는 것 부장님이 커버할 수 있겠습니까, 까지는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
메일을 쓰는데 바로 느낌이 왔다. 그래 이거다, 이게 바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기면 안 좋아지는 위의 느낌이었다. 누군가 명치를 걷어찬 것 같은 답답한 느낌. 홧병이라는게 이런걸까.
메일을 쓰고 따뜻한 물을 연거푸 마셨다. 걸어다니면서 명치를 쓰다듬어 보니 진짜로 위가 부푼 것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먹는다면 바로 체할 것 같고, 이 상태로는 잠도 자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하루 종일 느끼는 것일까 싶었다.
다행히 스트레스 받은 위의 불편한 감각이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장이 메일에 회신으로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해서가 아니었고, 내가 여태까지 본 모습과 파악한 조직에서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해서도 아니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바꾸려 할 때 인간의 불행이 시작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삶이던, 회사던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