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현준 Aug 04. 2024

소원을 빌어 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옛날 인터넷으로 본 글에서는 찜기 안의 만두처럼 쪄 지고 싶지 않다면 여름의 교토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바글거리는 관광객들과 강한 햇볕, 습도로 인해 고생하고 싶지 않다면 준비를 잘 하고 오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 동생까지 데리고 교토에 가면서 뭔가 비슷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런데 언제 또 다들 교토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하나라도 더 구경하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나는 가족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좋아서 가족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니까.




숙소로 예약한 온천 료칸은 교토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었고, 그래도 교토 근처까지 왔으니 교토 구경은 해야겠다, 적어도 그 유명한 청수사 만큼은 보는게 좋겠다 싶어서 일단 역 근처의 시장 구경을 하고 거기서 청수사 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정말 더운 교토의 날씨에 네 명은 각자의 땀에 쪄지면서 겨우겨우 청수사 까지 걸어갔다. 중간에 카페에 한번 들러서 열을 식혀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 몇 번 왔던 청수사에 오는 것은 오랜만이고, 그래도 교토의 상징 아니면 청수사 아닐까 싶어서 가족과 함께 열심히 올라갔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 끝 언덕 위에 자리한 청수사에 들어가서 좀 올라가니 그래도 힘들게 올만한 곳이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청수사 안에 있는 전통 건물 안을 구경하려면 추가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맨 처음에는 신발을 벗고 안을 돌아보는데 입장료를 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건물 아래에 있는 작은 코스를 돌아보는데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이었다. 가격이 100 엔으로 천 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는데, 부모님이 들어가고 나서 나는 굳이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았지만 나중에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싶어서 나도 돈을 내고 들어가 보았다.




신발을 벗고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내려가면 정말 빛이 하나도 없는 통로가 있는데, 이곳에서 벽의 염주를 붙잡으며 나아가다 보면 앞쪽에 위에서 내려오는 빛으로 밝혀진 둥근 돌이 나온다. 아 안내 전단지에서 말한 장소가 이거구나. 돌에다가 손을 올려놓고 소원을 빌라고 했다. 돌에다가 손을 올려 놓고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어 보았다.




다시 염주를 붙잡고 한치 앞이 안 보이는 공간을 나가다 보면 빛이 드는 통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가면 출구이다. 거기까지 나오고 나니, 왜 안에서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전자기기의 빛이 공간의 어둠을 밝히는 순간, 어둠 속에서 염주에 의지해 길을 가다가 돌에 소원을 빌고 나오는 그 공간의 컨셉이 완전히 무너질 테니까.




구경을 마친 가족들끼리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이야기 하다가 문득 소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소원을 비는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뤄질 것을 기원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것에 대해 소원을 비는 행동은 여기나 저기나 비슷하게 관찰된다.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고, 새해의 해를 보며 소원을 빌고, 터지는 불꽃을 빌며 소원을 빈다. 예로부터 내려왔을 이 전통은, 소원을 빈다고 해서 소원이 이뤄진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시간이 다를 뿐 그 합리성은 같다고 생각하니까.




어쩌면 소원을 빌라는 것은 그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으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소원을 빌라는 말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리고 그 소원을 위해 포기할 다른 소원들은 어떤 것이냐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부자만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부자가 되는 것을 대가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들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문득 서늘한 지하에서 나와 다시 교토의 찜통 더위 아래에서 소원에 대해 생각하니, 소원을 빌어 보라는 말이 다르게 느껴졌다.




가족과 함께 땀으로 쪄지던 교토에서, 문득 소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2027 07, 일본 교토


작가의 이전글 텅 빈 공간을 어떻게 나눌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