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누리자고 해서 누리는 호사
이번 여행 계획을 준비하기 전 동생에게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보내라고 이야기 했었다. 어디 유튜브 영상 같은거 쭉 보내고 나중에 무슨 영상에 나오는 거기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왜 안 가냐 이딴 소리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여기가 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라고 했다. 유튜브 영상 링크 보내지 말고, 장소를 찾아서.
그렇게 동생이 구체적으로 가 보고 싶다고 알려준 장소 중 하나가 일본의 유명 호텔에 있는 디너 뷔페였는데, 사실 나는 호텔이고 뭐고 약간 럭셔리한 쪽의 문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비싼 돈을 내는 만큼 배우려는 것을 최대한 배우겠지만, 일전에 가족끼리 장충동의 유명한 호텔 뷔페의 디너에 갔을 때도 비싼 돈 내고 줄 서서 입장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며 진열된 음식 중 가장 맛있는 부위만을 골라 먹어야 하는게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던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동생이 말했던 호텔은 호텔을 잘 모르는 나도 한 번쯤은 들어본, 일본의 고급 호텔 브랜드였다. 맨 처음에 동생에게 이름을 듣고 나서 너 거기가 어딘지 아느냐 로 시작했는데, 디너 가격을 검색해 보니 생각했던 것 만큼은 크게 비싸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디너 뷔페가 시간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1시간 짜리도 있고 1시간 30분 짜리도 있었다. 1시간 정도면 모든 음식을 열심히 먹을 수 있겠다 싶어 1시간으로 인터넷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호텔이 어찌나 넓은지 건물 안에서 음식점을 못 찾을 뻔 했지만, 다행히 문제 없이 도착했다. 그 호텔의 뷔페식 음식점은 일본 최초의 현대적 뷔페라 하는데, 직원 안내를 받아 자리에 가니 자리 배치가 생각보다 여유롭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갔던 고가의 호텔 뷔페에서 봤던 도떼기 시장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도 아주 많지는 않았고 전반적으로 쾌적한 편이었다.
일본어를 못 하는 나는 직원과 영어로 대화하기 조금 힘든 것이 아쉬웠지만, 어찌저찌 알고 있는 일본어를 긁어모아 무리없이 식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자리에 태블릿이 하나씩 있었는데, 이 태블릿은 말 그대로 메뉴판 역할을 하는 것인지 메뉴만 볼 수 있고 주문은 결국 직원을 통해 해야 했다. 태블릿 메뉴판을 두고 직원이 직접 주문을 받아줘야 한다는 것이 역시 택배 수기 작성 기계를 발명하는 나라답다 싶었다.
동생과 함께 다양한 메뉴를 이것저것 가져와서 먹어 봤는데, 사실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후기를 보니 한국 사람들의 혹평이 많이 있었다. 와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 고급 호텔 뷔페를 가면 일반적으로 먹기 힘든 킹크랩이나 랍스터 같은 해산물이나, 그릴에서 구워낸 소고기나 양고기 등 다양한 육류 요리, 고가의 생선회나 초밥 등을 컨셉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분명히 실망할 수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비록 거창한 해산물이나 육류 요리는 없어도,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고 모두 맛있고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기에 괜찮은 경험으로 만족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요새 점점 비싸지는 한국의 고급 호텔 디너와 비교한다면, 그에 비해 훨씬 싼 가격으로 경험해 볼 수 있으니 가격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술을 많이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기에 동생과 이곳에서 맥주를 한두 병 정도 같이 먹었는데, 동생은 이곳에서 먹은 맥주가 맛있었다면서 여행 내내 감탄을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그랬다. 비싼 음식점에서 비싼 맥주를 먹으면 맛 없다고 느낄 수가 없지 않을까? 가격을 알고 먹는 것인데...적어도 나에게는 입 속의 맛보다 마음 속의 맛이 더 영향을 크게 미치는 모양이었다.
비록 내가 원한 호사가 아닌 동생이 누리자고 해서 누린 호사로, 한번쯤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기억으로 남은 도쿄의 어느 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