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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an 09. 2025

동생과 할 이야기가 생각보다 없었다

그때 그 바에서

오랜만에 다시 찾아간 도쿄에서, 동생이 가 보고 싶다고 한 음식점에 가 보았다. 고급 호텔의 뷔페 음식점이었던 그곳은, 내 취향과는 많이 다른 고급스러운 느낌이긴 했지만 가격도 괜찮게 느껴졌고 나름 좋은 경험이 된 듯 했다. 




동생이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에 있는 바도 가 보자고 해서,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여행에 갔을 때 호텔의 라운지나 바 같은 것을 가 보고 싶어했는데 그때 못 가 봤었네, 하는 기억이 났다. 나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 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기에, 호텔의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괜찮아 보이는 바가 하나 있었다. 앤틱한 분위기가 내 취향에도 가까웠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서 한 세 발자국 걸어갈 때마다 배부르다면서 말하며 호텔의 바를 찾다가, 길을 잃을 뻔한 순간을 몇 번 넘기고 어찌어찌 위치를 잘 찾아 드디어 바에 도착했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안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바로 앞쪽에는 직원이 돌아다니거나 음료 제조하거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자리. 




일단 자리에 앉아 메뉴를 보다가 칵테일을 시켜 보았다. 술은 잘 모르지만, 호텔 바에 오면 일단 호텔에서 파는 칵테일을 먹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술을 써서 어떻게 섞고, 어떻게 데코를 해서 주는지 그런 것들. 이런저런 뜯어 보고 생각할 것이 많은 것이, 나에겐 칵테일 아닌가 싶었다. 




칵테일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 보니,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 내부 공간이 보였다. 전화 통화 금지라고 적혀 있는 안내가 문득 재미있어 보였다. 대화를 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전화 통화 하는 것은 안된다. 전화 통화를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기 때문일까? 




잠시 기다리자 나와 동생이 주문한 칵테일이 나왔다. 어떤 잔에 담는지, 어떤 술이 들어가는지 같은 것들을 보는데 이곳의 포인트 하나가 보였다. 바 테이블에 앉게 되면 술을 내어 주는 자리 바로 위쪽에 조명이 있다. 무대 위에 올라온 배우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내어준 칵테일을 비추는 그 조명이 잘 어울린다. 




이러나 저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그래도 동생과 여행을 왔으니 좌우지간 동생도 즐거운 경험을 했으면 했는데, 지난번 동생이 가족여행에서 가지 못했던 고급스러운 호텔 바를 이번에 가 본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이서 칵테일을 홀짝이면서 이야기 하다 보니 나는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우리 생각보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데?




물론 대화할 때 매 순간 웃음꽃이 피는 그런 인간관계가 아주 드물다는 것도 이젠 알고 있고, 그것이 반드시 동생과의 관계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대화란 반드시 기분 좋아야 할 필요가 없고, 그저 서로 기분이 나쁘지만 않으면 되는 것임이 최근 내가 깨닫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동생과 그곳에서 아 내가 생각보다 동생과 할 말이 없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은,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다. 서로가 대화의 결이 너무 다르고, 그 결이 이제 같아질 일이 앞으로 절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이젠 대화의 결이 다른 사람을 붙잡고 대화를 이어나갈 이유가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없지 않은가? 

좋은 분위기의 호텔 바, 탁자에 올라오는 인상적인 칵테일들, 하지만 문득 동생과 할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때 그 순간이었다. 




좋은 장소와 좋은 술, 하지만 동생과 할 이야기가 생각보다 없었다. 2024 11, 일본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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