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험한 순간은 바로 지금일지도
일을 하면서 오가는 곳 중에 얼마 전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한 공간이 있었다. 여기는 어떤 가게가 들어올까 하면서 왔다갔다 하면서 종종 들여다 보니, 테이블과 주방의 배치를 볼 때 카페가 들어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고 나서 카페가 문을 열었다. 영업을 시작하고 나서도 몇 번 오갔을 때 문을 연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시간이 잘 맞지 않은 것 같아 인스타그램으로 영업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방문해 보았다.
드립커피 전문인 듯 한 카페는 안에 자리가 많지 않았지만, 인기 많은 로컬 카페의 분점인지 사람들로 붐볐다. 레코드 판 뮤직과 드립커피의 조화가 컨셉인지 벽에는 레코드 판이 가득 꽂혀 있었고, 우드 톤의 내부가 잘 어울렸다.
나는 원래 산미가 없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이니 내 취향과 다른 커피를 먹어 봐도 좋겠다 싶었다. 산미 있는 드립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서 기다리니, 각진 느낌으로 만들어진 둥근 유리컵 안에 얼음과 드립커피가 담겨 나왔다. 마시고 나서 시간이 더 남아 카페오레도 주문해 보니, 카페오레도 맛있었다. 그렇게 두 가지 커피를 먹고 카페의 음악을 들으며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 본 적 없는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 나는 이런 경험들이 모여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것이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든 간에, 돈을 쓰는 과정에서든 간에.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성취와 인정 같은 것들도, 가 본 적이 없는 장소에서 여태껏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것을 먹는 경험도. 내가 여태까지 해 본 경험과 또 앞으로 해 볼 경험들이 모여서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믿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만약 그 경험에 금전적인 가치를 매긴다면 어떨까. 이 정도의 경험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정도가 아니라, 이번에 커피를 마신 것은 대략 이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데 이럴 바에는 어디에서 다른 커피를 마시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경험의 의미가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만들어 내는 금전적 가치로 바뀌게 되니, 경험이 가지는 의미는 잊혀지고 성취감은 떨어질 것이다. 경험의 가치가 다른 것과 비교되면서 하락하는 성취감은 덤이다.
살아가면서 매 순간을 이루는 경험이 만드는 특별한 의미는 없어질 것이고, 그 경험을 통해서 만드는 금전적인 이득만을 생각할 것이다. 살면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 콘크리트에서 피어 있는 민들레나 모이를 쪼는 참새들,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같은 것이 가지는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대신에 그 경험들이 가지고 있는 금전적 가치 그리고 그 경험 때문에 얻지 못한 금전적 결과만을 계산할 것이다.
하지만 계산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경험을 중요시 하게 여기는 대신에, 그것에서 어떻게든 돈을 추출하려는 것이 요새 사회적 분위기인 것 같다. 돈이 없다면 그런 경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일까, 아니면 그런 경험 보다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일까. 사실 돈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에, 돈이 없어도 그런 소중한 경험만 있다면 인생은 문제 없다 라는 뜬구름 잡는 이상론은 전혀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비록 돈이 중요하더라도 이 세상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순간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히 해 나가면서, 일상에서 겪는 소박한 소중함을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그런 자신의 삶에서 더이상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때.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만든 일상적인 특별함으로 채워졌던 사회가, 더이상 사람들에게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그런 순간.
그런 순간이 지금은 아닌가, 하고 요즈음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