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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Dec 05. 2021

더이상 소설은 안 씁니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겨울에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좋아 주말에 목욕탕에 간다. 목욕탕에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니, 웹소설 플랫폼 광고가 눈에 띄었다. 웹소설 작가들을 위해 지원금을 뿌린댄다. 수많은 경쟁업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일단 몸집을 불려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절박한 모습이 그런가보다 하지만, 웹소설 작가라는 이야기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중학교 때 아무 생각 없이 노트에다가 별 대단찮은 낙서를 쓰며 판타지 소설을 써보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몇 번을 끄적이며 고등학생이 되자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때는 노트북 같은 것을 쓸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중고 PDA를 사다가 키보드를 연결해 텍스트 파일 형태로 글을 쓰곤 했다. 그렇게 쓴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며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 보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내가 딱히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능 없는 일을 계속할 만큼 소설쓰기에 대한 끈기가 있는 것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쓰는 것이 더이상 즐겁지 않았다. 뭔가 아쉽고 막연히 원하기에 버킷리스트 맨 아래에 적어 두지만, 이루지 못할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점점 관심도 가지지 않는 상황. 소설 쓰기란 지금의 나에게 그런 것이다. 





나는 한때 내가 생각한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주인공의 마지막 숨을 쓰고 싶었다. 지금은 내가 그러지 못할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나는 왜 소설을 썼던 거고, 왜 더이상 쓰지 않는걸까? 



 


한때 끝을 보고 싶었던 소설쓰기는, 이제 이룰 생각도 없는 버킷리스트로 남았다. 210913, 서울 화양동





생각해 보면 나는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나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작게 말하자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었고, 크게 이야기 하자면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기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내 머릿속에서 지나치게 큰 덩어리로 떠다녀서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려 하면 횡설수설하고 갈피 못 잡는 이야기만이 나왔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이 소설이었다. 나는 소설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소설을 통해서 내가 말로 하고 싶은 것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응당 그리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러한 내 가치관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소설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에 가고 나서 소설이 아니라 일반적인 글쓰기를 통해 충분히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면서, 굳이 소설만을 통해서 내 가치관을 드러낼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내가 특별한 이야기를 쓸 만한 재능도 없고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점점 소설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전만큼 재미있지 않았고,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은 굳이 소설일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소설쓰기를 통해 드러나던 내 생각은, 굳이 소설을 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210818, 서울 건대입구





세상에 쓴 사람의 생각이 담기지 않는 글은 없다. 소설은 이야기이니까 쓴 사람의 주관이 담기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자신의 가치관을 주장하기에 소설만큼 좋은것도 없다. 자신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드러며 이해를 강요함과 동시에, 비판을 흘려보내기에 소설만큼 좋은 핑계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짧은 시간동안 소설을 쓰면서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을 꺼내보였던 것도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은 있는데 설득을 하는 과정은 귀찮으니, 소설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이야기 했던 것이다. 비록 그때 내가 소설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라 해도, 지금 생각하면 의도는 충분히 그러했다. 





지금의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적 측면에는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내 가치관을 말하고 다듬는 것에는 아직도 관심이 많다. 항상 옳을순 없겠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해 보려 한다. 그것이 한때 짧게 좋아했던 소설쓰기가 나에게 남겨준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쓰기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생각을 정리해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210806, 서울 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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