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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Dec 12. 2021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

응급실은 가급적 가지 맙시다

나는 꽤 건강한 편이다. 보험비는 많이 내 놓고 별로 돌려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환절기마다 비염 증세가 있긴 하지만 별 문제 없이 지나갈 때도 있고, 군복무 전후로 있었던 천식 증세도 약을 안 쓴지 1년이 넘었다. 우리 가족 중에 내가 가장 보험금을 덜 타먹었을 것이다. 아마 보험사에게 나같은 우량고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응급실을 간 적이 있다. 엄마를 모시고 살면서 그때 딱 두 번 가봤을 뿐이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응급실은 그 누구도 가고싶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안 가는 편이 좋겠다 라는 것이었다.



건강해서 응급실을 별로 안 가봤지만, 방문했던 경험이 좋지는 않았다. 2021/11/29, 서울 화양동






엄마가 짧은 시간동안 요로결석으로 고생하셨던 적이 있다. 처음 요로결석 진단을 받고 밤에 아파서 응급실에 가셨다. 그때는 진통제도 빨리 나오고 크게 문제도 없었기에, 나중에 아플 때 먹을 약을 받는 것으로 잘 끝났다. 동네 병원에서 요로결석을 깰 수도 있지만 자동배출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다기에 일단은 엄마는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로결석이라는 것이 언제 아플지 모르는 것이고 아프면 바로 응급실 갈 준비를 해야 했다. 다음날이 휴일이라서 집에서 쉬고 있던 나는 엄마가 자정이 다 되어 가서 갑자기 일어나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혀 효과가 없었지만 엄마는 시간이 늦어서 나가기 애매하다며 주저하셨다. 나는 아무래도 빨리 병원을 가는 것이 좋을것 같아 엄마와 함께 다시 응급실로 갔다.




새벽 1시쯤이 되서 도착한 응급실은 사람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다. 접수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진통제를 기다렸다. 사실 엄마는 이미 이전에 똑같은 증상으로 응급실을 간 적이 최근 들어 두 번이나 있었기에 나는 진통제가 빨리 나올줄 알았다. 곧 진통제가 나오고 두 시간즘 지나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도 진통제가 나오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엄마가 아파하면서 몸을 뒤트는 것을 보고 중간에 몇 번 간호사를 부르고, 뭐뭐 해야 되요 어쩌고 하는 ARS 고객센터 책임 돌리기 같은 이야기가 오가길 몇 번째. 나는 옆쪽 벽에 있는 텅 빈 쓰레기통을 걷어차고 소리를 지르며 칼춤을 추면 진통제가 빨리 나오나 하고 잠깐 고민했다.




내가 그렇게 하면 엄마가 과연 좋아할까 생각했기에 나는 그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생각만 할 뿐이었고, 내가 응급실 난동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거기서 진통제가 나올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은 넘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통제가 나왔다. 간호사가 혈관을 잘 못 잡는지 바늘을 몇 번 반복해서 찔렀다. 엄마는 침착한 목소리로 부탁인데 다른 사람을 불러달라고 했다. 다른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를 연결해 주었다. 엄마는 조금 나아지신 듯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응급실에 온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진통제를 모두 맞고 응급실을 나오니 아침 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로 나가면서 나는 엄마에게 그냥 결석을 깨시는게 좋겠다고 했고, 엄마도 그게 낫겠다고 했다.




응급실이 불편한 것은 누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한계일 것이다. 2021/12/04, 서울 온마이웨이




응급실에서 짧은 시간을 머무르며 느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환자들은 응급실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오게 된다. 간호사와 의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즉각조치가 불가능한 환경에서, 즉각조치를 원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환자도, 간호사도, 의사도, 이런 환경을 과연 좋아할 수 있을까. 직업적인 관점 이외라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런 환경에 직접 처해 보니 왜 응급실 난동이 일어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눈 앞에서 가족이 고통받으며 몸을 뒤틀고 있는데 그저 진통제 하나가 안 와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을 보다보면, 내가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해야 진통제가 더 빨리 나올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좌우지간 응급실은 꼭 필요한 곳이다. 누군가는 갑자기 다칠 수 있고 누군가는 갑자기 다칠 그 사람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비록 그곳에 있는 사람이 그 누구도 그 공간을 원하지 않는다 해도, 그 공간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원래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가득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응급실은 안 가는게 좋다. 나는 그때 엄마와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엄마와 응급실에서 나오자 저 멀리 동이 터 왔다. 가급적 응급실은 안 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2018/09/14, 서울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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