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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유럽을 갑니다

같이 하는 여행보다는 모시는 여행

by 문현준

때는 2017년, 모두가 마스크 안 쓰고 자유롭게 해외여행 계획을 짤 수 있었던 시절. 나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나중에 다시 유럽을 가자고 했다. 특히 가장 좋았던 노르웨이를 생각하며, 나중에 다 같이 노르웨이를 가면 좋겠다 했다. 이미 잠깐 두 분을 모시고 여행을 해 봤던 경험이 있었던 나는, 고생길이 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언제 두 분을 모시고 여행을 가겠냐는 생각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다.



그리고 2018년, 항공권이나 일정 같은 것을 몇 번의 번복 끝에 확정하고 나서 드디어 여행 가는 날. 원활한 일정을 위해 오전 적당히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세 명이서 캐리어 하나씩 끌고 집을 나섰다. 평일에 가는 버스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먼저 도착해서 캐리어를 줄줄이 세워놓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도착하자 문제가 생겼다. 자기가 먼저 도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엄마가 말했다. '우리는 먼저 와서 캐리어 세워 났으니까 우리는 일단 캐리어 넣고 탈께요!' 버스 바닥에 앉아서라도 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지만, 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젠 낮설게까지 느껴지는, 북적이는 공항의 모습




면세점 구경을 하기 위해 더 일찍 가야 한다는 엄마 아빠 말에 면세점 구경을 안 하면 되지 않냐, 라고 말했지만 먹힐 리가 없다. 시간이 없어서 아빠가 먼저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는데 이런, 아빠의 캐리어가 붙여지지 않고 남았다. 캐리어를 붙이기 위해서는 아빠가 있어야 하고, 아빠는 이미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나니 아빠가 다시 나왔다. 결국 세 명이 같이 캐리어를 붙이고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걸까?



약간 남은 시간 동안 면세점 구경을 하는데 부모님이 비싼 양주를 산다. 여행 가는 길에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막을 수 없다. 적당히 구경을 하고 비행기에 올라탄다. 런던으로 가는 대한항공 A380 비행기에 사람들이 꽉 찼다. 천천히 이륙한 비행기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런던으로 날아간다. 창가 자리에 앉아 예쁜 구름을 보며 기내식을 먹는다. 12 시간 동안, 비행기가 날아가는 지도와 창 밖을 번갈아 비교하며 저기는 어디쯤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서 주는 것을 모두 먹는다
창밖 유람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






도착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으면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이날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는 런던 시내를 가로질러 갔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이는 자그마한 런던 시내에서 익숙한 건물이 보인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하강하는 동안 목가적인 풍경과 함께 고풍스러운 건물이 곳곳에 보인다. 옆 자리의 엄마에게 저기 성이 있다고 이야기 하고 같이 본다. 드디어 영국에 도착해서, 비행기가 착륙하고 바퀴를 굴리자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든다. 갑자기 비행기 안이 웅성웅성 하며 소란스러워진다. '우리가 독일을 이겼다는데?' '우리가 독일을 이겼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한국이 독일을 이긴 날, 이 터무니 없는 소식은 영국에 도착한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자그마하게 보이는 런던의 랜드마크들


한국과는 많이 다른 목가적인 풍경





비행기에서 우르르 내린 사람들과 함께 입국장으로 간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이 되듯 사람들이 모인다. 불길한 예감에 엄마 아빠를 재촉하여 더 빨리 가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입국 심사대에는 긴 줄이 생겼다. 입국 심사가 빨리 끝나기를 기대하지만 지나친 기대다. 악명 높던 영국의 입국 심사는 사람을 세워 놓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아빠는 도착하자 마자 집에 가고 싶다며 투덜댔다. 그나마 인터넷이 되는 것이 다행이고, 내가 맨 처음 영국에 갈 때보단 짧게 끝났지만, 줄 서기 시작해서 입국 심사를 받기 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부모님과 함께 창구에 선다.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괜시리 긴장되는 순간이다.


'영국에 며칠 있을거니?'

'이틀 있다가 노르웨이로 갈거야'

'영국에 아는 사람은 있어?'

'없어'




고난의 행군





긴장한 것보다 싱겁게 끝나는 입국심사를 마치고 가방을 찾아 버스를 타러 간다. 한 낮에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이 넘게 지났지만, 지구 반대편의 영국은 아직 해가 떠 있다. 입국심사가 훨씬 오래 걸릴 것을 예상하고 버스 표를 예약했지만, 다행히 추가 요금을 내고 일정 변경이 가능하게 예약해 두었다. 버스를 타고 히드로 공항에서 나와 빅토리아 스테이션으로 간다. 내가 맨 처음 런던에 갔을 때 도착한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부모님과의 일정을 생각하여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구했다. 가정집 같은 건물 사이에 호텔이 있다. 칸칸이 줄 맞춰 지은 듯한 집에 들어가 체크인을 한다. 여권을 보여주니 축구 얘기부터 한다.



'축하해 한국이 독일을 이겼어.'

'그러게. 비행기에 탄 사람들 모두 놀랐어.'

'정말 잘하더라고. 칭찬할 만해.'

'옛날에 한번 독일한테 깨진 적도 있었는데.'



짧게 사담을 나누고 체크인을 한 뒤 밥을 먹으러 나온다. 해가 지고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문 연 음식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밥 먹을 음식점이 없어서 1시간 정도를 헤맨 적이 있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그래선 안되겠지. 음식점을 찾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저쪽으로 쭉 가면 피자집이 있을거야 하고 알려줘서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처음으로 먹는 현지 식사. 피자와 맥주는 무난하게 잘 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 다행이다.




피자와 맥주, 누구라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조합



숙소로 돌아가는 길

숙소는 번화가에 있다기보다는 현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 같은 주거지역에 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독특한 느낌의 건물들 사이를 편하게 돌아본다. 도착하고 나서 또 시간이 지났기에 시차 적응이 쉽지 않겠지만, 그나마 흐름이 자연스럽기 때문인지 크게 문제가 없다. 숙소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는다. 한국에서 출발한 뒤 20 시간 정도 지나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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