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우울증 있는 거 같애.
최근 퇴사한 친구는 정신과를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삶이 무기력하고, 왜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살아야 하나 싶어."
꼭 내 친구가 아니더라도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이들은 많다. 브런치 글들만 봐도 정신과에 다녀온 이야기가 수두룩하니 말이다.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생각될 정도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익히 들었던 이야기라 해서 사안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https://youtu.be/aWvV_ogHbg4?si=shN_I53WF2BpMaKF
<슈카월드>에선 한국 자살과 우울증 현상 진단에 대한 콘텐츠를 몇 번 올렸는데, 한국 현주소를 잘 알려줄 수 있는 콘텐츠는 '출산율은 꼴찌, 자살률은 1위'이다.
<슈카월드>에선 객관적 지표를 보여주면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큰 장점.
이 콘텐츠에서 인용한 BBC 기사는 충격적이다.
이 기사는 한 가정에서 우울증으로 자살한 일을 사례로 다루며 한국 사회 어두운 면을 조명한다.
기사에서 바라본 한국은 다음 문장과 같다.
한국은 K-pop과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겉으로는 성공적인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35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은 10세에서 39세 사이의 주요 사망 원인입니다.
매번 저출산을 고민하며 국가에 일할 사람이 없다 고민하는 나라에서 정작 살아 있는 이들은 죽음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A recent joint study by Korean and Japanese researchers found that one of the main differences in suicide prevention policies between the two countries is money.
한국과 일본 연구진의 최근 공동 연구에 따르면, 양국의 자살 예방 정책의 주요 차이점 중 하나는 예산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In 2018, South Korea's budget for suicide prevention was about $16.8m (£13m) - just 2.1% of Japan's budget of $793.7m.
2018년, 한국의 자살 예방 예산은 약 1,680만 달러(1,300만 파운드)로, 일본의 7억 9,370만 달러 예산의 단 2.1%에 불과했습니다.
출처 : https://www.bbc.com/news/world-asia-66400158
우울증에 대한 정의를 먼저 봐 보자.
이건 진단 기준을 보면 좋다.
DSM-5 주요 우울장애 진단기준 9가지다.
이 진단 기준 9가지 문항을 그냥 보면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잘 풀어 설명한 유튜브 콘텐츠는 <닥터프렌즈>의 '자기가 우울증인지 알아보는 방법'이다.
https://youtu.be/OXepsDU3ENg?si=_mCQp5KiO61QpvLn
누구나 단순 우울감은 느낄 수 있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인의 판단은 어렵고, 정신과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 어렵다면
이 콘텐츠를 보고 먼저 자가진단을 해 보는 것도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병원을 찾는 것이다.
정신과 진료 관련은 보험이 가능하고 자기 부담금은 30% 정도라고 한다.
https://youtu.be/dH3dUtbzpUA?si=joMJitGSZf3mtRPs
우리나라에 많은 우울증 환자 중 대다수는 가벼운 진료와 처방으로 호전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정신과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현재 힘든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은 항상 치열하고, 도태되는 삶은 항상 약한 것이었다.
그러니 내 아픔은 참아야 하는 것이고
내 슬픔은 당연한 것이 돼버린 세상이다.
내 슬픔은 당연하지 않다.
남들이 힘들다고 내가 안 힘든 것도 아니다.
나 자신이 삶의 중심에 설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방향이 생기지 않을까.
<슈카월드>에선 이 높은 자살률과 청년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보았다.
청년 정책이 필요하고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단순 그들을 위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가 없음을 걱정하기 전에
이미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좀 더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