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에선 여러 잡지나 책에서 야한 사진들을 발굴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H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그는 모든 것에 처음이 되길 원했던 남자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든.”
그가 항상 싱싱하고 탄탄한 것을 좋아했다면 나는 반대로 비계를 좋아했다.
“대체로 그런 것들은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거든.”
H는 성취하는 쪽이라면 나는 생존하는 쪽이었다.
내가 H를 알게 된 건 한 사교 클럽이었다. 당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던 나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관음증. 그 단어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내 흥미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을까?
남중에선 여러 잡지나 책에서 야한 사진들을 발굴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아무런 감정없이 몸 비비는 모습에 내 후손들을 뿌리고 싶지 않아.”
그 요상한 모임에서 리더격을 맞은 애는 나름 전교 10등 안에 드는 머리 좋은 녀석이었다.
야동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못해 상상으로 남은 욕망들을 가장 1차원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수컷은 그저 뚫으려하고 여성은 그 힘을 막지 못하고 수용하게 된다. 힘의 완력 싸움을 의도적으로 주입시켜 결과적으론 남성 우월주의와 왜곡된, 현실엔 볼 수 없지만 마치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관계에 환상을 심어줘, 미래로 나아갈 청년들의 생각을 제한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림은 뭐가 다른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까.”
“뭐라고?”
“결국 인간의 욕정은 처음이 되고 싶은거라고. 내가 누구보다 먼저 벌리고 싶단 욕정.”
“끔직해.”
“맞아. 그러니까 너도 춘화를 택해라. 그게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그와 함께한 ‘음지의 동아리’는 헌책방까지 섭렵하며 상상하지 못한 곳들에서도 그들이 평가한 야한 삽화를 찾아내곤 했다. 내가 본 그림은 심리학 책이였다. ‘관음증’이란 정의와 함께 귀족 남자가 건너편 창가를 보며 페니스를 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어쩐지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졌지만 관음증이란 단어는 더 또렷해졌다.
H는 사교클럽에서 누구보다 빛이 났다. 그 빛은 많은 이들을 유혹했고 끌어당겼다. 그는 그만의 철학이 있었다. 서툰 여자를 좋아했다.
“나이 먹을 수록 싱그러운 꽃은 딸 수 없거든.”
나는 그의 여성편력같은 집착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면 내게도 몫이 떨어지곤 했다. 대부분 나를 통해 H에게 닿을 수 있을거라 믿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면 그녀들도 H에 대한 호기심은 쉽게 식었기에 누구 하나 다치지 않는 안전한 관계였다.
“세상엔 새로운 것은 없어.”
음지의 동아리 회장은 중학교 졸업식 날 그가 지금껏 모은 수많은 춘화집을 불태웠다. 오래된 고서부터 <why : 성과 사춘기>까지 그 양도 상당했다.
“인간이 도넛과 다를 게 없단 걸 깨달으면 모든 흥미가 사라져.”
그가 말했다.
“그게 왜?”
내가 물었다.
“결국 우린 어떠한 균열도 만들 수 없어. 그 누구에게도 조금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그는 표정을 찌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우린 이 세상에 균열하나 일으킬 수 없다고.
결과적으로 H에 대한 관심은 쉽게 식었다. 멋져 보이는 그의 언변과 스킬은 오직 여성 편력을 위한 꼬리침이었고 그 이상 무엇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저 그런 도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