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떡볶이

“비가 올 것 처럼 아주 안 오네.”

by 황훈주


J가 있는 카페에 들어서자 마자 내 뒤로 비가 쏟아졌다. 조금씩 떨어지던 비가 결국은 쏟아지는구나.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다.


“어 왔어?”


그는 내가 미리 주문한 커피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초코 케이크도 같이. 그냥. 형이 좋아할 거 같아서. J가 웃으며 말한다. 너… 역시 좋은 사람이구나. 나는 J가 포크를 든 후에 따라 케이크를 잘랐다.


“잘 지내지?”

내가 물었다.
“뭐. 언제나 똑같지.”

그는 씨익 웃는다.

“죽을거 같은거?”


그 말에 J도 나도 웃는다. 그래. 정말 죽을거 같아. 요즘 너무 바쁜거 같애. 정말 마지막까지 다 와 가나 봐.
사는 게 이리 어려운 건 줄 알았더라면 어른이 빨리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조금만 할 걸 그랬다. 어른 되면 우아하게 양복입고, 사무실에서 커피 마시고, 서류 봉투 들고 다니면서 전화하고…. 아. 물론 어른은 그랬다.


하지만 그게 우아한게 아니라 정말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걸 깨달아 버린 것이다. 이런 어른의 삶에 로맨스 한 방울 타면 우아해져 보이고, 야근 한 컵 부으면 삶이 퍽퍽한 삶은 달걀이 된다. 매일이 힘들고 어렵다. 문제는 그걸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게 문제지.


“이거 마시고 떡볶이나 먹으러 갈래?”


J에 대해 아는 건 많이 없다.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것도 오늘 알게 되었다. 조금 의외다. 얼큰하게 뼈 해장국이나 찐한 돼지뼈 냄새나는 순대국밥이 아닌 떡볶이를 말한다는 게 낯설다. 거. 계집애들이나 먹는 음식 아니야? 근데. 좋아. 나 오늘부터 계집애 할래. 헤헤.


J랑 어떻게 친해졌더라. 떡볶이를 먹으러 걸어가면서 계속 생각했지만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는 계속 서울 어느 동네 떡볶이가 맛있었다며 그 떡볶이 체인점 집을 찾아 해메 걸었고 그래서 생각보다 꽤 많은 거리를 걸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먹었던 전국 떡볶이를 이야기 했고 나는 그가 그 수많은 떡볶이 집을 찾아다니는 동안 J를 알지 못했던 시간들을 헤아려봤다. J 인생의 즐거운 순간엔 떡볶이가 함께 했을까. 그럼 지금 그와 떡볶이를 찾아 이 수많은 건물 속을 헤집고 다니는 이 순간도 그에겐 즐거운 순간인 걸까? 그러길 바랐다.


내가 J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에이 몰라. 친해지는 게 꼭 계기가 있어야 하나. 같은 일 하고 매번 같이 힘들다, 힘들다 하다보면 친해지는 거지. 서로 마주 앉아 힘든 이야기를 담배 연기 뿜듯 뭉게뭉게 쌓아 올리면 어느새 기분이 붕 뜬다. 내 걱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착각. 서로 만나 이야기 하는게 내게는 담배다. 뻑뻑 피는 거지. 서로 앉아 마주보고 담배를 피우는 거다. 야. 어제는 내가 관리하는 남자 애가 또 사고 치더라. 글쎄 이제 그만 하고 싶다는 거야. 그럼 나는 또 화가 나는 거지. 아니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왜 갑자기 그러는 건데요. 그리고 한숨. 그렇게 담배 같은 넋두릴 서로 뻑뻑 피운다. 뭉게뭉게 연기가 쌓이듯 말이 싸인다. 이러케 하면 기부니 조크든요.


“형. 내가 신당동에 직접 가서 떡볶이를 먹은 적이 있거든…”


그는 떡볶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풀어 놓는다. 신당동 떡볶이라. 확실히 요즘은 떡볶이 춘추전국시대다. 여기저기서 아주 처음 보는 떡볶이 집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아.아. 이제 강호의 도리란 이 세상엔 없는 것인가. 한집 건너 또 떡볶이 집이 있을 정도라니. 떡볶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초등학고 문방구 앞 컵 떡볶이가 생각 난다. 내 인생 최고 떡볶이. 어릴 때 나도 뭔 꿈이 있던 거 같은데…


야. J야. 누가 그러더라, 우리가 하는 일이 의사랑 같다고. 결국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그런 말 들으면 그래도 좀 기운이 나. 응?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아니 그냥. 떡볶이 하니까 생각나서.


“아무튼 그랬다는 거지.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같이 밥 먹으니 얼마나 좋아.”


길게 떡볶이 추억을 늘어 놓던 J가 웃었다. 미안. 니가 무슨 말 했는지 못들었어. 그래도 나도 따라 웃는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사실 같은 일 하는 입장으로 안다. 웃는 게 다 웃겨서도 아니고 화내는게 다 화나서가 아니다. 사람이 어찌 기대기 충분히 든든한 벽이던가. 그 옆에서 마치 거울처럼 함께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이다. 그러니 웃는 게 웃는 것도 아니다. 아직 우린 이르지만 어느새 이곳까지 와버렸다.


“비가 올 것 처럼 아주 안 오네.”


J를 만난지 오랜만이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럴 수 밖에 하는 일이 같으니 마음이 같다. 원래 담배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냥 떡볶이나 먹자.


삶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건, 시간의 추억과 그 추억을 같이 견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