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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짧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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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Oct 24. 2020

1.너무 늦어 버려서 미안

오래된 레코드 집이 있었다

나는 가끔 일상과 상상이 뒤섞일 때가 있다. 꿈에서 본 걸 사실로 착각하곤 한다.

소설 같은 삶보단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글은 소설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지금도 사실을 적고 있는지 모른다.




택시를 탔다. 직장 생활을 하며 택시 타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지만 적어도 시간은 살 수 있다. 버스는 1,250원. 택시는 8,000원. 시간은 40분과 15분.

“요즘 나라 꼴이 말이 아니야.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택시 안에선 유튜브 영상이 한창이다. 누군가 구속됐다는 뉴스 영상이다. 나는 처음 듣는 소식이다. 나름 매일신문을 챙겨본다 생각했는데. 아직 난독증이 고쳐지지 않았나? 아니 난독증이 애초에 고칠 수 있는 병이던가

"그러니까 술을 작작 마셔야지."

가현이 말했다. 책 만드는 사람이 난독증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긴 하다.

"물 무서워하는 물고기, 태양을 사랑한 눈사람, 추위 많이 타는 철새."

가현은 파하하 하고 웃었다.


 택시 기사는 내 손에 든 신문을 흘깃 보더니 요즘 세상이 걱정스럽다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시작했다. 그는 분개하고, 슬퍼하며 또 웃긴 일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뗬다. 그의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파여 있다. 나는 지금 출근이 늦었고, 어제 늦게까지 처리한 외주 정산 서류로 머리가 아프다.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적절한 공백에 맞장구를 친다. 얼른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다행히 그의 말은 전화벨이 울리는 것으로 끊겼다.

“그래. 잘 들어갔고? 힘들면 한 병 더 마셔. 그렇게 하면 개운해.”

고개를 돌리니 그는 눈주름이 보였다. “주름은 살아온 길이야.” 민수 형은 말했다. “최대한 햇빛은 보지 말고 살아. 그러면 최소한 피부 늙는 건 더디니까.” “에이. 살면서 어떻게 해를 피해요.” 시답지 않은 이야기였다. 민수 형은 최근 호주로 유학 갔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소식이 끊겼다.


유튜브 영상에선 패널의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택시 기사는 다시  나라 걱정으로 열변을 토한다. 자세히 보니  8개월 전 영상이다. 팽팽한 신경이 툭 끊긴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세요.


차는 어중간한 갓길에 섰다. 뒤에서 차들이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린다. 오래된 가게를 취재하는 게 이번 기사 핵심이다. 조금 걸어 도착한 가게는 문이 닫혔다. 예전에 김동률 6집 앨범 CD를 산 곳이다. 다음 앨범 나오면 오겠다 했는데 조금 늦었나 보다. '지금까지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글이 붙어있다. 나는 멍하니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김동률 6집 앨범 다음은 2018년에 나온 EP 앨범이었다. 타이틀 곡은 ‘답장’.



대전 신나라레코드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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