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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Oct 31. 2020

2.너는 내게 몇 번째일까?

미연은 인스타그램을 다시 시작했다.




"니가 연락을 자주 안 하니까 그렇지. 자주 놀아주고 연락해주고 심심하지 않게 했으면 진짜 인스타 끊었지."

미현의 말에 나는 나중에 밥 한 끼 꼭 같이 하자고 말했다. 밥 한 끼 하자. 그건 일종의 타협이랄까, 위로랄까. 미안한 마음에 꺼내는 애니팡 하트 같은 거다. 근데, 요즘에도 애니팡 하는 사람이 있나? 여튼. 요즘 자꾸 밥 약속만 늘어난다. 물론 실행된 약속은 아직 '0'이다. 갑자기 수많은 밥 약속 친구들에게 미안하네...

"여튼 내가 사진 올리면 얼른얼른 좋아요 누르라고!"

그럼 그럼. 니가 올리면 나는 눌러야지. 나는 알겠다고 했다.

참 오랜만에 미현과 카톡으로 안부를 나눴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미현은 가끔 뜬금없이 카톡을 보내곤 했다. 한때 나 혼자 좋아했던 미현은 지금 내 곁에 몇 번째일까. 아니 너에게 나는 몇 번째 사람일까.


"그때 그 오빠 있잖아. 갑자기 나랑 밥 먹자고 하는 거야. 뭐 사주는 거니까 거절할 필요는 없었지."

2년 전, 미현은 과 선배와 사귀었다. 그 날, 밥 먹은 날에 선배가 갑자기 고백했다고 한다. 갑자기 잡은 밥 약속, 그냥 만난 그 자리에서 미현은 과 선배와 사귀게 됐다.

"그냥. 좋았어. 아니, 좀 외로웠던 게 컸으려나."

나는 미현이 과 선배와 사귀게 된 그 날, 웃기게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미현을 좋아하고 밥 먹자 부르는 연락에 두근거렸지만 매번 무서웠다. 나는 미현이 외로워하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외로움 곁에 서서 어찌할 줄 몰랐다. 그냥 무서웠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날과 선배와 사귀게 됐다는 연락에 나는 차라리 '안전한' 친구 사이가 된 것에 감사했다.

나는 너를 멀리 저 편에 두어 마주 보고 걷는다. 너는 남자 친구가 있으니 나는 안전선을 넘지 않는다. 너에게 나는 밤에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가끔 내게 밤에 연락을 하곤 했다. 자니? 아니야. 그냥 심심해서.


"그래서 우리 언제 만나?"

"글쎄. 다음 주에 한번 시간 되지 않을까?"

"아니야. 다음 주는 없어. 다음 주, 다음 주 하다가 그냥 끝난다니까. 내일이나 내일모레 중 언제가 괜찮아?"

가현은 자기 마음대로 내일 집에 오겠다며 저녁 메뉴로 가지 덮밥을 주문했다. 내겐 수많은 밥 약속 대기줄이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맨 마지막 대기표를 뽑은 가현이가 대기번호 1번이 되었다.

"이건 새치기가 아니라 오픈 전에 문 두드리고 들어온 거지. 그러니까 아무 문제없다고."

가현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집에 올 때 맥주 한 캔 사간다고 했다. 나는 오늘 퇴근하면 방 청소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가현과 통화가 끝나고 카톡을 보니 미현에게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내일 시간 있어?"

미현은 매번 이런 식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 많았다. 그럼 나 혼자 그 답을 찾으며 애쓰곤 했다. 나는 매번 핸드폰 앞에 서서 대기번호를 뽑는다. 종이엔 대기번호가 없다. "그냥 기다리셔요." 핸드폰이 말했다. "그럼 나는 언제 만날 수 있나요?" 나는 묻는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죠. 저는 그저 대기번호가 있다는 것만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나는 핸드폰 앞에 가만히 쪼그려 앉는다. 미현은 매번 알 수 없는 말로 대기번호를 주곤 했다. 나는 가현이가 생각났지만, 그래서 미현이 톡이 무엇을 원하든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나는 네게 몇 번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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